이영경 작가와의 만남 솔멩이골작은도서관

(작가와의 만남 후기)

 옆집 할아버지한테 몇 시인지 물어보러 갔다가 닭 구경하고 개미 구경하고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분꽃 따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온 이야기.
‘넉점반’의 능청맞은 아이를 익살스럽게 그려낸 이영경 작가님이 솔멩이골에 오셨습니다.


 1시쯤 도착해 ‘꿈터’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두 시에 강연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12시에 전화가 걸려왔어요.
“저희 여기 벌써 도착했는데요.” ...
작가님 모시고 먼 길 달려온 사계절출판사 편집자님 목소리.
‘뜨아~~안돼!! 이럴 수가. 이제부터 준비하려고 했는데.’
바로 꿈터로 튀어가서 맞은편 마을 카페에 두 분을 모셔 놓고 괴산 두레학교 할머니들 그림책을 건네 드린 뒤 강연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커다란 창에 검은 종이 붙이고, 손으로 쓴 글자 현수막 붙이고, 전기밥솥에 밥 안치고....곁에서 8살 난 딸내미가 다급한 어미 맘을 알아챘는지 척척 잘 도와주네요.
그 사이 동네 아낙들이 하나둘 도착했고 두 분을 모시고 솔멩이골도서관을 둘러보고 돌아오자 풍성한 점심상이 뚝딱 차려져 있었어요. 각자 챙겨온 다양한 반찬과 꿈터 부엌에서 바로 만든 달걀말이,연잎밥, 곤드레나물밥......
역시 밥심이예요. 수다를 곁들이며 함께 먹는 밥 한 끼로 어긋난 상황은 종료되고 작가님과의 훈훈한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익숙한 일상이 상대방에겐 흥미 있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요. 동네 논에 서식하는 투구새우 이야기, 올챙이, 도롱뇽 (동네 할아버지들이 정력에 좋다며 도롱뇽 알을 손으로 퍼 드신다는 얘기는 저도 첨 들었네요.) 마을 아낙들의 일상다반사를 재미있게 들어주신 두 분.

 

 식사 후에는 작가님의 이야기 속으로 쏙 빠져들었지요.
‘봉지공주와 봉투왕자’를 어쩜 그리 재미나게 읽어주시던지. 어른들이 그림책 들으며 그렇게 깔깔 웃는 모습 처음 보았습니다. 출판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노래까지 만들었다며 우쿨렐레를 튕기며 노래하는 유튜브 영상 속 작가님 모습도 너무 귀여우셨어요.
‘넉점반’이 태어난 배경과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며 이 책이 많은 이들의 사랑과 공감을 받는 이유도 알게 되었지요. 작가님의 성실한 취재와 애정 어린 눈길이 없었다면 책 구석구석에 녹아있는 그 시절 농촌 풍경이 이렇게 정감 있게 나올 수 없었다는 사실.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란 문장에서 옆집 할아버지와 아이 집의 지리적 위치를 화면에 담아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셨다는데요. 그토록 여러 번 봤음에도 이번에 새롭게 눈에 들어온 건 바로 두 집을 연결하는 또랑과 작은 다리였습니다. 바로 또랑물을 그리고 싶었다는 말.
아, 또랑물이라니요. 예전에 아낙들이 모여 빨래하며 이야기 나누던, 집과 집 사이에 다정하게 흐르던 작은 개울. 그림책 속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온종일 자기 세계에 빠져 놀던 아이는 저 작은 다리를 사뿐히 건너 바로 옆 제집으로 돌아가지요. 혀를 내밀며 반갑게 문밖으로 마중 나온 강아지와 부채질하며 아이를 흘끗 바라보는 할아버지, 심부름을 완수한 뿌듯한 표정의 아이. 새롭게 눈뜬 자의 시선으로 모든 그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형으로 하는 일인극을 좋아해서 체코와 프랑스까지 가서 인형극 워크숍에 참가했다는 이야기, 취재차 잠시 갔던 연변에 이끌려 아예 짐을 꾸려 일 년간 가서 살았던 이야기, 일본 작가가 그림을 의뢰한 티베트 옛이야기 그림을 위해 티베트로 취재 간 이야기(그것도 한겨울에 티베트라니. 예전에 나도 겪어봤던 그 혹독한 추위와 고소증!!)
작은 체구로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모습과 달리 작가님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하며 연신 흘러나왔습니다. 이런 얘기 또한 아주 자분자분 들려주시네요.

귀엽고 능청스럽고 때론 익살맞은 아이.
가까운 거리도 빙빙 돌아 자기만의 여행으로 전환할 줄 아이.
알 듯 모를 듯 무표정 속에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자기만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한 아이.
넉점반에 나오는 이 아이가 이영경 작가님, 바로 자신의 투영이라는 사실을 이번 강연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완전 자격 미달인 제가 도서관 관장이라는 권한으로 이런 작가님을 모실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지금까지 먼 길 마다 않고 솔멩이골작은도서관에 와주셨던 모든 작가님들께 감사드리고 싶은 하루였네요.

결국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계획한 일이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계속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이야기는 나침반이고 건축이다.
우리는 이야기로 길을 찾고 성전과 감옥을 지어 올린다.
이야기 없이 지내는 건 북극의 툰드라나 얼음 뿐인 바다처럼
사방으로 펼쳐진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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