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주 토요일,
왕복 7시간이 넘는 서울행을 감행했다.
편식하지 않는 아기(모유 분유 모두 잘 먹는)와
나보다 아기와 더 잘 놀아주는 남편 덕분에 가능했던 서울 여행.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아기에게 젖을 물린 후 동네에서 떠나는 첫차를 탔다.
아직 이슬이 덜 마른, 어스름한 새벽의 첫차를 기대했으나
사방은 이미 훤했고 경운기 소리가 딸딸딸 들려오는 들녘은 진즉에 분주했다.
한 시간 반 만에 청주에 도착해 다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양재동 예술의 전당.
일러스트 원화전을 보러온 것이다.
먼저 전시를 본 땀언니는 멀리서 일부러 보러올 정도의 전시는 아니라했지만(동의함)
전시의 구성이나 내용 등을 떠나 원화를 본 적이 없는 나에겐
원화를 본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치있는 전시였다.
어떤 크기로 어떤 종류의 종이 위에 어떤 재료를 써서 어떤 필치와 색감으로 그렸는지
그것이 무지하게 궁금했기 때문이다.
(진즉에 궁금했더라면 그전에도 몇 번 있었던 다른 원화전을 보았을 텐데.)
존 버닝햄의 원화는 그림책보다 훨씬 훨씬 더 감동적이었고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고릴라의 두 눈이 앤서니 브라운의 눈과 어쩜 그리 닮았는지...
처음 본 일본 작가 아라이 료지의 그림도 마음에 들었다.
전시를 보다가 생수를 꺼내 마시는데
스텝이 다가와 물을 마시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음식물 반입금지에 물마시는 것까지 포함되는 건가.
뭐 이런 경우가 있나? 하고 순간 열을 받았는데
유니폼 맞춰 입은 이 언니들, 계속 열받게 한다.
에르베 튈레의 작품이 흰벽 전체에 움직이는 그림자로 전시되었다.
천방지축 우리의 아이들, 당연히 폴짝폴짝 뛰면서 벽을 쿵쿵 쳐댄다.
전시기획자, 이런걸 예상한거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유니폼 언니,
-벽 치면 안돼요. 치지 마세요.
아이들이 액자에 손만 댄다 싶으면 총알같이 달려와 못만지게 하고,
벽에서 50센티정도 떨어진 바닥에 가이드 라인을 표시해 두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라 주위를 주고
꽤 여러명의 언니들이 꼿꼿하게 서서
오로지 산만한 아이들의 동작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내 귀엔 '안돼요'라는 말만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제 엄마들까지 나서서 언니들이 말하기 전에
-그림에 손대면 안돼.
라는 말을 아이들한테 주입시키고 있었다.
전시의 대상이 아이들인지 엄마들인지
그 모호한 전시 기획이나 구성은 둘째로 치자.
호기심 왕성한 아이들의 특성을 무시한
이 멍청한 전시 운영이라니.
액자를 아이들 눈높이에 걸어두었으면
아이들이 만져도 될 만큼 튼튼하게 걸어두던가 말이야.
..하면 안돼 ..하지 마시오 라는 금지의 환경속에서 자란 우리 엄마들도
유니폼 언니들과 공범이 되어 아이들에게 '안돼'를 주입시키고 있었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으로 전시장을 세번 둘러보았다.
전시장 한켠에 마련된 상상도서관.
그림책을 실컷 보고 막차를 타고 가려했으나
젖은 탱탱 불고 쿡쿡 쑤시고
결국 세시간 반만에 전시장을 나왔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돌덩이가 된 딱딱한 가슴 앞섶이 푹 젖고
젖비린내가 폴폴 풍겨왔다.
동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게 7시 10분.
13시간의 서울 여행.
나름 괜찮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