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농부가 되자! 소소한




우리집 뒤에 있는 언덕배기 오미자밭.



3년 전 가을, 여기에 오미자를 심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니네 집 뒤에 오미자 농사해라."

 

군에서 오미자를 특화작물로 지정해 지원 사업을 하는데

사업 신청을 위한 재배 면적을 맞추기 위해

이웃에 사는 ** 아저씨가 우리 의견도 묻지 않고 

정목수 이름을 명단에 올린거다.


'이 무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겨?'


 하우스 폴대 설치하고 묘목심는 것만 도와준 정목수는

이 밭을 내게 일임했다. 


"이 밭은 임자 것이니,

당신이 알아서 관리하고 수확해서 팔고,

 번 돈은 당신 당신 맘대로 쓰시게."


'이건 또 뭔 소리여?'


갑작스런 사태에 몹시 당황했느나

돈 한푼 못 벌던 그 당시

이 말은 내게 너무나 달달한 유혹으로 다가왔다.

(그땐 악마의 속삭임인 줄 몰랐지.)


내 맘은 벌써 오미자 밭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파란 가을 하늘아래서 탱글탱글 새빨간 오미자 열매를 따는거야.

내가 직접 밭을 일구고 거름 주고 묘목을 심어 재배한 싱싱한 열매지.

가족들에게 나눠주고 지인에게 보내고, 팔아서 돈도 벌고.... 

나도 이제부터 오미자 농사짓는 농부여.' 하고

혼자 우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음만큼 몸이 움직여주지 않던 시절.

작년 여름은 얼마나 가물었던가? 
저 땅은 또 얼마나 척박했던가?

미리 퇴비 신청도 하지 않아 밭에 뿌릴것도 없었다.
음식물쓰레기와 우리식구 분뇨 모아둔 퇴비를 겨우겨우 뿌렸다.
바싹바싹 타죽어가는 묘목을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보다가
외발수레에 물통을 담아 언덕배기로 실어날랐다.
서너번 수레를 옮기다가 허리가 삐끗해서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관수시설 하기엔 물대기가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그래서 포기했다.
뒷밭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첫 수확하는 작년 가을.
 함께 오미자를 심었던 다른 팀들은 
실컷 오미자열매를 만지며 수확의 기쁨을 누렸다.

"니네 얼마나 땄어?"

사람들은 만날때마다 우리집 오미자의 안부를 물었다.

몇 알이나 열렸으려나?
나도 궁금했다.
작정하고 밭에 올라가 오미자열매를 땄다.

'그래도 우리 먹을 건 나오겠지.'

내심 기대했다. 

어머나.
세상에.

잎 사이를 샅샅이 뒤져서 한 알도 놓치지 않았다.

한 대접도 채 나오지 않았다.

400평 밭에서.

이 이럴수가...

올해는 오미자밭을 돌보기로 했다!!1

효선언니네서 퇴비 50포를 샀다.
승용차에 9포대씩 실어날랐다.
외발수레에 두 포대씩 싣고 언덕을 가뿐하게 올랐다.

부직포를 반쯤 걷어내고,
나무를 하나하나 살피며 가지치기를 한 다음
퇴비를 뿌려주었다.

단순한 과정의 반복.
하지만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일.

날마다 사부작사부작 하고 있다. 


올해는 비가 좀 많이 올 것 같은 이 기분좋은 예감은? 
근거없는 나의 강한 바람일 뿐인가?

저 푸릇한 작은 열매가 
다닥다닥 탱글탱글 영글어가길 기대하면서.

오늘 아침에도 오미자 밭으로

고고씽이다.~~!! 










드로잉 시간 소소한





명덕초 교사 드로잉 세 번째 시간.

인물 드로잉 첫 시간으로
한 명씩 모델이 되어 그림을 그렸다. 




내 맘대로 베스트 포즈상을 드린 선생님.

멋지셔요.







진 선생님 딸 열 두살 채영이.
수업 끝나고 엄마 책상에 짱박혀 책 보고 있던 아이.
우리의 모델이 되어다오.
 





우리동네 주민, 2학년 선생님.
별이 엄마의 위풍 당당 뒷모습.







명덕초 선생님들과의 드로잉 시간. 
함께 그림 그리고
작가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너무 좋다.

에곤 실레와 고흐의 드로잉 작품집을 샀다.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를 사서 공부도 하고 있다.
최민식의 '휴먼선집'과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집을
괴산도서관에 신청했더니 다음달 바로 들어왔다.
내게도 새로운 시간들이다.



  











뜬금없는... 소소한


지난 밤,

숀 필립스 노래를 듣다가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떠올렸다.

열세 살 때부터 20년간 내 심야시간을 헌정했던 라디오 프로.

예순 중반에 접어든 그는 지금 무얼 하고 있으려나?

멘트 대신 엔딩 시그널과 함께

시 한 편 읽어주던 그의 목소리가 그립다.

https://www.youtube.com/watch?v=7Bhtnrbw6aU



너무나 감격스러운. 소소한


어제 하루.

오전에 사피엔스 책 소개 글 써서 밴드에 올리고,

입석에 사는 미경언니네 집에 가서 함께 나물을 뜯었다.

차를 마시며 언니는 유튜브로 몇 곡의 노래를 선곡해 들려주었다.

요즘 자기가 좋아했던 곡들을 골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는다고 했다.

너 숀 필립스 알아?”

아니 처음 듣는 이름이야.”

쩍쩍 갈라진 메마른 땅 위에 앉아 검은 망토를 두른 채 기타를 연주하는 남자.

금발의 긴 머리카락이 망토 위에 가지런히 드리워져 있다.

이 기이한 뒷모습의 남자가 부른 노래 한곡에 완전히 매료돼 버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FsajhQDTI0U


https://www.youtube.com/watch?v=VuML414hiVU


https://www.youtube.com/watch?v=QtNEFJ3uyS4


아니 이런 싱어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

 이런 멋진 남자를 알게 해줘서 고마워 언니,”

 

미경언니네 집을 나와 농바우 사는 현주네로 갔다.

, 아낙 가자. 우리 모여서 김밥 먹고 두 시간만 놀기로 했잖아.”

초등학교 봄소풍 날.

애들 싸주고 남은 김밥을 가져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다.

현주를 태워 동네 무인 카페 아낙으로 갔다.

태임, 선주, 혜윤 씨랑 뒤늦게 온 희진 언니랑 김밥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아낙에 있는 전자 피아노를 현주가 연주하고 선주가 노래를 부른다.

반주에 맞춰 담이랑 손잡고 춤도 춘다.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아낙 앞에 있는 효선 언니네 오미자 밭에서 퇴비 몇 포대를 실었다.

우리 오미자 밭에 뿌릴 퇴비를 효선 언니한테 사기로 했다.

차로 여러 번 실어 날라야 할 것 같다.

 

현주를 집에 데려다주고 오미자 밭으로 올라갔다.

부직포를 걷고 가지치기를 하고 퇴비를 뿌려줬다.

비가 쏟아진다.

 

집 안으로 들어와 어제 사온 열무 두 단을 다듬고 씻었다.

아이들 돌아올 시간.

우산 들고 다못골 다리로 마중 나갔다.

열무를 소금에 절여 놓고 저녁을 지어 먹고

밤에 열무김치를 담갔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김치 한번 담그는 것 조차

얼마나 버거운 일이었던가? 

하루에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니...

이런 게 가능한 시절이 오긴 오는구나.


너무나 감격스러운 하루였다.






도서관 책소개-사피엔스/유발하라리 솔멩이골작은도서관


솔멩이골 도서관을 맡기로 결심했을땐,

도서관 청소와 책관리 정도만 할 생각이었다.

하다보니 신간도 구입하고 책소개도 하게 되고,

그림책 읽기 모임까지 생겼고, 후원금 모금까지 하고 있다.

일이란 그런 것,

예측하지 못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난번 도서관에 새로 들여놓은 책 중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

두껍지만 술술 읽히더라는 평이 대부분인데, 

술술 읽히지만 이 엄청난 인류의 거시사를 어찌 빨리 읽어치우랴? 

라고  혼자 생각하며 5개월에 걸쳐서 읽었던 것 같다.

도서관 밴드에 책소개 한다고 올려 놓았으니,

밑줄 쫙쫙 그어놓은 대목을 처음부터 되짚어 가며

실로 오랜만에 독후감이란 걸 써봤다.

책소개 글을 쓰던 말던 아무도 신경 안쓸텐데

그래도 이렇게 글로 정리해보니 그 내용이 온전히 내것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작년에 워낙 화제가 되었던 책이라 이미 읽은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빅뱅에서부터 유인원 사이보그까지, 방대한 역사의 요약이라 이야기꺼리가 정말 많은 책입니다. 생물학, 역사, 종교, 신화, 과학 등 수많은 지식을 종횡무진 누비지만 명료한 문체와 핵심을 잡아내는 저자의 놀라운 통찰력으로 방대한 역사가 술술 읽힙니다. 곳곳에 스며있는 그만의 냉소적인 유머를 읽어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워낙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다보면 각 분야 전문가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겠다 싶은데, 근거와 사례를 들며 단순 명료하게 핵심을 요약하는 그의 자신감이 참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이 책을 쓸 당시가 삼십 대 중반, 1976년 생. 저보다 어리네요.

채식주의자라서 그런지 인류역사를 인간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며 동물의 생명권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많아요.또한 책 후반부에 종교 이야기할 때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인터뷰 기사를 보니 매일 두 시간씩 명상을 한다고 하네요. 자신의 통찰력의 원천이 명상이라고 한 강연에서 말하기도. 매년 2달씩 위파사나 집중 명상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책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도 참 매력 있는,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은 저자예요.(사심 폭발!!)

 

우리가 배운 역사의 진행 방향이 과연 올바른가? 내내 의문을 던지게 하는 책 속으로 들어가 보지요.


이 책은 크게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 이렇게 4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방식을 말하는데요.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과 수다 때문이라고 합니다. 뒷담화이론이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해서 인간이 상호신뢰하고 연합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는 겁니다. 단순한 상상을 넘어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공통의 신화들을 만들어 냈고 그런 신화들 덕분에 여럿이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우리도 모이면 소문과 뒷담화과 난무하죠. 그럼으로써 서로 가까워지고 신뢰도 생기고 이런저런 일도 벌이고... 그게 다 사피엔스 시절부터 그랬다는 겁니다.

우리 조상들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았다는 급진적 환경보호운동가의 말은 믿지 마라. 산업혁명 훨씬 이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생물들을 아울러 가장 많은 동물과 식물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사피엔스가 지구의 다른 종을 절멸시킨 강력한 도구가 바로 이 인지혁명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씀.

수렵채집에서 농경생활로 접어들면서 식량을 확보하고 안락한 시대를 열게 되었다는 역사도 뒤집지요.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고.’

초기 농부들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인구가 늘고, 면역력이 떨어지고, 전염병이 늘어나고 내일 먹을 식량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에 시달리게 되고 단일 작물로 인해 대기근이 발생하기도 하지요. 또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되고 농부의 잉여식량을 뺴앗는 지배자가 군림하게 되며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지요.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있게 만드는 능력. ... 농업혁명은 덫이었다.”라고.

농업혁명으로 강력한 제국이 생기자 사회적 결속을 위해 가상의 이야기들을 지어냅니다.

신화, 종교, 민주주의, 자본주의, 자유, 평등이라는 가치 등 이 모든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질서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역사는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를 믿게 만들어왔죠. 많은 근거와 사례로 이 상상의 질서를 설명하는 부분이 재미있습니다.

문화는 자신이 오로지 부자연스러운 것만 금지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부자연스러운 것이란 없다.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것이다. 정말로 부자연스러운 행동,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은 아예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금지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자연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없고 그걸 금기하는 건 인간이 만든 문화라는 거죠. 이를 바탕으로 동성애, 여성,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의 고정 관념을 흔들어 놓습니다.

과학혁명은 무지의 혁명이었다고 말합니다. 무지를 인정하는 순간 알고자 하는 욕구와 탐욕이 생기고 이는 신대륙을 식민지로 만든 제국주의와 연대하게 되고, 자본주의로까지 연결되지요. 근대 이전에는 신과 현자들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믿었지요. 무지를 인정한 현대 과학은 새로운 지식 획득을 목표로 삼고 짧은 기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합니다. 새로운 지식을 얻고 적용함으로써 어떤 문제든 다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죠.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예측하지 못한 수많은 문제와 마주하게 되죠.

 

후반부로 갈수록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야기는 어두워집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역사의 다음 단계에는 기술적,유기적 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정체성에도 근본적인 변형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이다. 또한 이러한 변형은 너무나 근본적이어서 사람들은 인간적이라는 용어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사피엔스의 역사가 정말 막을 내릴 참이라면, 우리는 그 마지막 세대로서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의 질문에 답하는 데 남은 시간의 일부를 바쳐야 할 것이다.‘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빠르게 발전하는 사이보그 공학, 유전공학, 생명공학 등 인간의 기술은 앞날을 예측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SF영화에서 본 암울한 미래를 떠올리면 섬찟하지요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윤리적으로 브레이크를 걸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두 페이지에 걸친 저자의 후기가 있는데 그 마지막 문장,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라고 588페이지에서 끝이 납니다. 뭔가 더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왠지 끝나지 않은 것만 같은 느낌이 팍~

역시나. 사피엔스 후속으로 호모데우스-신이 된 인간5월 말에 출간 예정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는 2015년에 나왔다네요출간 즉시 우리도서관에도 구비해 놓겠습니다.

 

내가 지금 믿고 있는 사실과 가치가 과연 맞는 것인지, 너무 쉽게 믿어버리고 더 이상 의심하지도 알려고도 들지 않는 건 아닌지? 계속 반문하게 만드는 사피엔스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우리동네 벚꽃 소소한

드디어 솔멩이골 가로수길에도 벚꽃이 폈다.

이 반갑고 짠한 기분은 뭐란 말이지?

 

주말 동안 열 때문에 잠을 잘 못잔 지오.

평소 같으면 바로 일어났을 텐데.

일어나야지하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아직도 한밤중이다.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그냥 두기로 한다.

나린이는 먼저 학교 가고,

열시가 가까워서야 방긋 웃으며 나오는 지오.

 

엄마, 왜 안 깨웠어?”

 

깨웠는데 네가 안 일어났어.

네 몸이 더 자고 싶다고 너한테 그랬나봐.

그럴 땐 푹 자야해

 

아침을 먹고 지오를 차에 태워 유치원으로 가는 길.

지난주까지 앙상하던 벚나무에 분홍 꽃잎이 달렸다.

다른 지역의 벚꽃이 한 창 만개한 뒤 꽃잎이 흩날릴 때도

이 가로수길 벚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었다.

이 길을 지나치면서 늘 생각했다.

이상한 벚나무를 심었어.

싹 다 뽑아버리고 다른 수종의 벚나무를 심어야 해.‘

 

그런 벚나무에 드디어 꽃이 폈다.

수줍게 비를 맞고 있다.

튀겨지다 만 팝콘처럼 소박하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 거지.”

 

그래 지오 말대로 추워서 늦게 폈나보다.

꽃이 펴 준 것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악담을 퍼부은 것에 미안했다.

우중충한 날씨에 마음이 화사해졌다.

탐스럽고 화려한 벚꽃길 보다

듬성듬성, 노년의 머리카락 같은,

소박한 우리동네 벚꽃길이 더 좋다.  


그러니, 늦게라도 좋아.

내년에도 꼭 꽃을 피워주길.






나린이의 고민 바람의 아이들


엄마, 선생님이 스티커 주는 거 별로 안 좋은 것 같아.

 왜 주는지 모르겠어.

 그냥 평범하게 그런 거 안 주고 하면 안 돼?

 누군 주고 누군 안주고."

 

나린이가 식탁 의자에 앉아 쭈뼛쭈뼛 말한다.

상심과 무력감을 나타내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불만을 토로하듯 툭 튀어나온 입으로 우물우물 말한다.

 

모든 게 옳고, 그래서 믿고 따라야만 하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담임선생님은 그런 존재일 것이다.

    

선생님은 스티커를 많이 받는 아이에게 포상을 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숙제를 내주고, 정리정돈을 시킨다.

벽에 붙은 스티커 개수를 보며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들도 다 안다.

이건 뭔가 부당하고 심히 불편한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 나린이는 혼란스럽다.

"엄마, 마음이 불편해. 학교 가기 싫어."

"그럼 급식 먹을 때만 가면 되잖아."

지오가 끼어든다. 

"오늘 급식엔 *** 이 나왔어.

 너무 맛있어서 두 번이나 먹었어.

 엄마, 내일 급식에는 **** 나온다. 맛있겠지?"


일기 내용의 대부분이 먹는 얘기요,

식구들과 밥 먹을 때도 급식 메뉴 얘기를 자주 하는 탓에

'넌 급식 먹으러 학교 가는 거지?' 라고 놀리곤 했다.


"나린아, 네 생각을 선생님한테 말해보는 게 어때?"

"싫어."

"그럼 엄마가 대신 말해줄까?"

"안 돼.
 5월에 장터 할 때 스티커 개수 만큼 물건 살 수 있대.
 그걸로 맛있는거 사먹어야 해."
 

먹보 나린, 정말 못 말린다.

그나저나 요 스티커 남발하는 몹쓸 방식을 어째야 쓸까?







신혼여행기 인터뷰라? 히말라야 여행기


지난달, 신혼여행 관련 취재하다가 내 책(허니문 히말라야)을 발견했다며

한국관광신문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휘리릭 써서 답 메일을 보냈다.

십 년이나 지난 신혼여행기라니?

말이 허니문이지 달달한 기억은 없는 허니문 히말라야.

차라리 고급 리조트와 해변이 있는 휴양지나 갈걸. 하고 후회했던 허니문 히말라야.

그래도 신혼 초에 글 쓰고 그림 그려서 나온 내 유일한 책 허니문 히말라야.

인터뷰에 답하며 떠올려보니 그래도 잘 갔다 왔단 생각이 드는 허니문 히말라야.


하여튼 날마다 메일 보내야 하는데라고 노래 부르면서 쉬이 쓰지 못했던, 

결국 마감날인 오늘에서야 급하게 써서 보낸 허니문 히말라야.


 



(종결어미 생략하고 수다 떨 듯 말할게요. 능숙한 솜씨로 편집해 주시리라 믿으여....)

 

1. 허니문을 히말라야로 가게 된 이유와 어떻게 준비했는지?

 

결혼 전 혼자 7개월 정도 네팔, 인도, 티벳, 파키스탄, 중국을 다녀옴.

그 여행이 도시생활자를 종결짓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됨.

여행 다녀와서 다시 직장 다니는데 번번이 6개월을 넘기지 못하다 아예 영원히 관두기로 함.

서른 중반, 백수가 되어 집 근처 공방에 자전거 타고 가서 목공 배우고, 공방 옆에 있는 전원카페에서 알바함.

그때 전부터 같은 환경단체 회원이었던 남편이랑 연애했고(2006년 새만금 방조제 건설 반대 운동하며 가까워짐)

같이 시골 가서 살기로 함.

귀농한 친구가 살고 있는 괴산에 가서 살 집 먼저 구해놓고 결혼식 마치고 신혼생활 시작.

한옥 학교 나온 남편은 집 짓는 목수 생활 시작.

그때 한 출판사와 계약하고 히말라야 여행기 원고 작업 시작함.

돈 아끼려고 신혼여행 안가기로 했는데,

남편이 먼저 네팔에 갈까?” 하고 제안함.

그 말에 꽃망울이 툭하고 터지듯 히말라야의 풍경이 화들짝 펼쳐졌고,

마침 여행기 쓰면서 포카라에서 만난 소년과 히말라야 산 속 아이들이 계속 생각나던 중이라

마음을 바꿔 신혼여행 가기로 계획을 변경,

단 며칠 만에 티켓팅하고 짐 꾸려서 휘리릭 가게 되었음.

 

2.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순간을 두 가지 꼽자면?

 

첫 번째)일주일간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했는데,

베이스캠프(4130m)에서 잘 때 새벽 세 시쯤 남편이 깨워서 밖에 나감.

 털모자, 목도리, 장갑으로 무장하고 매트 깔고 앉아 둘 다 말없이 밤하늘을 올려다 본 기억,

이른 새벽의 묘한 기운이 감도는, 낯선 행성에 떨어진 듯한 기운에 압도당함.

 

두 번째)출국을 하루 앞두고 남편은 피씨방 가고 난 쇼핑하러 나섬,

그때 거리에서 티베트 독립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시위대를 만남,

우리가 간 때가 우기라서 소나기가 자주 내렸는데 장대같이 퍼붓는 빗속에서

‘SAVE TIBET','NON VIOLENCE'라 적힌 주황색 머리띠를 한 티베트 시위대를 따라

타멜거리를 지나 왕궁 근처까지 가게 됨.

거기서 경찰이 시위대를 에워싸고 티베트인들을 막무가내로 끌고 가 경찰차에 태우기 시작.

할머니 한 분이 두 명의 여경에게 끌려감. 그걸 저지하려다 나도 끌려감.

다음날 비행기 타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단추 떨어지고 옷이 뜯긴 채 간신히 빠져나옴.

 

3. 히말라야 허니문을 다녀오고 어떻게 인생의 경로가 바뀌었는지?


1번에서 이야기함. 허니문 전에 나홀로 히말라야 여행에서 인생의 경로가 바뀌었고

허니문은 그렇게 나를 바꾼 히말라야를,

속리산에 둥지를 튼 내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보고 싶어서 다녀옴.

어쨌든 지금 10년째 여기 괴산, 속리산 자락에서 두 딸 아이와 함께

남편이 손수 지은 집에서 잘 살고 있음.

 

4. 작가님과 같은 허니문을 꿈꾸지만 현실적인 상황으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은?

 

현실적인 상황이 뭘까요? 물론 각자 다르겠지만.

히말라야를 허니문으로 정했다면 둘 다 산과 걷기를 좋아하는 거 아닐까요?

그럼 다녀오면 되지 않을까요? ㅋㅋ

 

5. 히말라야 허니문 말고 또 다른 작가님의 여행얘기가 궁금합니다.

 

첫 여행은 25세에 호주, 뉴질랜드 9개월간 여행했어요.

호주에서는 국립공원 돌며 나무 심는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주로 농장을 돌며 각종 야채랑 과일 따기,

6개월 머물고 뉴질랜드 가기전 카지노 가서 하룻밤에 400만원(친구 따라 갔다가)땄다가

뉴질랜드 가는 비행기가 지연되어 다시 카지노 가서 다 탕진하고 100만원 언니한테 빚지고....

서른 살에 제게 주는 선물로 40일 간 유럽 여행했는데 재미없어서 히말라야로 떠났어요.

원래 4개월간 인도 네팔만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거기서 티베트, 파키스탄 갔다가 카람코람 하이웨이를 거쳐 중국까지 가게 되었네요.

파키스탄의 훈자마을이 기억에 남고, 기회가 된다면 파키스탄 낭가파르밧 트레킹을 해보고 싶어요.

 

 

6. 혹시 좋아하는 여행관련 명언이 있으신지요? 더불어 히말라야 허니문 중 들었던 노래가 있는지요?

요즘 들으면 그 당시를 떠올리게 만들어주는.


(명언)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나의 길을 가기 위해 사는 거다

이건 호주 여행 때 만나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제 영혼의 도반이 한 말.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다. 누군가 걸어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루쉰

운명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다.’ 니체

홀로 장기간 여행할 때 누군가 나를 지켜주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곤 했어요.

어려운 순간마다 누군가 나타나 나를 지켜주는 듯한.

그건 지금 현재, 제 삶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누구에게나 그런 행운이 있다고 봐요.

자신이 알아채느냐 모르고 지내느냐의 문제.

 

(노래)

인도 시킴에서 50대 초반의 네덜란드 여성 리타와 20대 영국인 수리나와 함께 트레킹 할 때 

 (트레킹 코스/ 펠링-케체팔리 호수-욕솜-타쉬딩-펠링)

제가 아리랑을 가르쳐 주자, 리타가 아프리카 여행 때 배운 거라며 가르쳐준 노래가 있어요.

지금도 가끔 아이들에게 불러줘요.


The river is flowing is flowing is flowing

The river is flowing back to the sea.

Mother earther is carrying me the child I will always be.

Mother earther is carrying me back to the sea.

 

지금 구글 검색해보니 유투브에도 많이 떠 있네요. 꼭 한 번 들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dcKRx7_z4mk (요 버전으로)

저도 이 질문 때문에 막 검색해서 듣게 되었는데 말씀대로,

으아~ 지금 제 온 정신이 히말라야를 헤매고 있네요.

우왕 이 노랠 검샘할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7. 앞으로의 계획은?


올 겨울 아이들 데리고( 9, 7세 딸) 라오스, 태국을 다녀올까 생각 중.

 

내년이 결혼 10주년 되는데 남편이 20일 정도 여행 휴가 줌.

막상 가려고 하니 어느 나라를 가야 하나 고민 중.

혹시 이런 기획은 어떠신가요?

육아를 끝내고 서서히 여유가 생긴 중년 여성.

소싯적엔 젊음과 미모?를 무기로 혼자 잘 다녔는데 십년 넘게 주부로 지내다가 막상 홀로 떠나려니 막막함.

여행 패턴도 달라지고 다양한 상품도 많아졌는데 그걸 이용하는 게 나은지

그냥 예전처럼 확 가버리는 게 좋을지.

그땐 시간이라도 많았지만 지금은 여행 기회도 많지 않고 시간도 한정되어 있어서 이래저래 고민중.

이 나이에 혼자 가기엔 심심할 것 같아서 친한 언니 꼬드겼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십년이나 지난 신혼여행기 떠올리는 걸 계속 회피하다가 이제야 답신 보냅니다.

생각나는대로 휘리릭 적은 글이라 많이 정신없네요.

그래도 덕분에 잠시 동안 즐거웠습니다.^^




솔멩이골도서관 소식 솔멩이골작은도서관


(솔멩이골도서관 소식)


도서관에서 책 세 권 구입했어요.


지난번 그림책 살 때 같이 산 건데 이제야 소개합니다.
여기저기 꽃망울 터지고 엉덩이가 들썩이는 봄날.

책 읽기 썩 좋은 계절은 아니죠.
가볍게 볼 수 있는 책들입니다.


1. 사는게 뭐라고 / 사노 요코...
2.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글,그림
3. 사피엔스/유발하라리


(사는게 뭐라고)


‘100만번 산 고양이’,‘태어난 아이’,‘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의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

201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의 일상이 담긴 에세이예요.

그녀의 그림책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독특하고 묘하고 매력있는 할머니죠.

마치 동네 아줌마들과 웃고 떠들며 수다 떨다 찔끔 눈물 한 방울 나는가 싶더니

결국 펑펑 울어버리게 만드는 듯한 경험,

그녀만의 유쾌한 독설로 노년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섣달그믐에 쓸쓸해 보이기 싫어서 비디오도 못 빌리는 사람,

편집자에게 독설을 퍼붓고 금방 자책하는 사람,

일하는 건 딱 질색이라면서 영원히 읽힐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들어낸 사람,

암수술 직후에도 매일 담배를 피웠던 사람,

시한부 선고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재규어를 산 사람,

어린 시절부터 형제들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

그래서인지 자신의 죽음에도 초연했던 사람,

그럼에도 어려서 죽은 남동생을 떠올리면 언제라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

다층적인 매력을 지닌 사노 요코 할머니, 만나 보실래요?


나머지 두 권은 다음에...









그림책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솔멩이골작은도서관


도서관 밴드에 그림책 강연 소개와 함께
새로 산 그림책 이이야기를 몇 번 올렸더니,

한 사람, 두 사람
자신이 읽은 재미난 그림책 얘기를 올려준다.

그걸 보고 누군가는 요즘 그림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초등생 아들에게 밤마다 그림책을 다시 읽어주기 시작한 엄마도 있다.

누군가 소개한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알사탕'을 사서 도서관에 기증한 이도 있다.

솔멩이골안에 그림책 이야기 꽃이 팡팡 터지고 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