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산책 길위에서



지난 여행지에서 나를 설레게 만든 것 중 하나는 숙소 방명록에 남겨진 지도였다.
자신이 직접 걸었던 길을 손수 글과 그림으로 만든 지도.
지금은 이런 게 있기나 할까?
십여 년 전만 해도 종이지도 펼쳐 들고 현지인에게 물어보며 다니는 게

여행자의 당연한 태도였다.

스마트폰과 네비의 등장은 지도 보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드넓게 펼쳐진 지형지물 속에 내가 들어가는 방식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손가락을 드래그하며 가지를 뻗 듯 길을 확장해 간다.
지형과 하늘을 보며 지금 내 위치를 탐색하는 게 아니라

(너무 원시적인 얘긴가?)

액정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된다.

만약 내가 지금 배낭여행을 떠난다면

난 어떤 패턴으로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게 될지 의문이 든다.



그런 지도 한 장이 내게 날아왔다.


“내가 거닐었던 공간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손수 그린 지도 속 공간을 우린 종일 거닐었다.



보안여관에서 만난 소록도의 역사-1936년 시 동인지

 (시인부락)이 여기서 시작되었다지요.

고스란히 남은 목조건물의 뼈대를 보며 건축의 시간성에 대해 생각했어요.


너무 가보고 싶었던 윤동주 문학관.

실은 저도 동주 덕후랍니다.

사진 오려서 액자에 넣고, 편지 쓰고, 관련 책과 다큐 모조리 섭렵하고,

작년엔 동주 영화 보고 공황장애에다 우울증까지 찾아왔었드랬죠.



시인의 언덕을 지나 한옥으로 지은 청운도서관에도 들렀어요.


한때 핫플레이스였던 서촌.

예쁜 가게들 보다 이런 곳들에만 눈길이 가네요.


박노수 미술관에 들러 집구경도 했어요.
어떤 친일파가 딸을 위해 지었다는 저택.
'아무리 딸을 사랑한대도, 아무리 돈이 많대도
어떤 아버지가 딸을 위해 이런 집을 지어줬을까?'
우린 이런저런 상상을 했지요.
  그 집을 사서 40년간 거주했던 노 화백이 미술관으로 기증한 공간.

우린 그림보다는 집 구석구석 요모조모 뜯어보며 공간에 관해 얘기했어요.

맨질맨질한 마룻바닥과 창과 문의 디테일과 주물 장식,

지금은 만나기 어려운 장인의 손길에 대해.

정원쪽으로 창이 나 있던 2층 다락방과 붙박이장.

아이가 되어 놀고 싶은 공간이었지요.  

욕실에 있던 올 스텐으로 주문 제작한 욕조에 엄청 감탄했어요.

지금껏 스텐으로 만든 욕조는 첨 봤지요. 




서촌 골목골목을 지나 시인 이상의 집에서 오랫동안 커피를 마셨습니다.

천원을 기부하면 캡슐커피를 내려주거든요.

그런 기부금이 모여 이 공간을 관리, 운영하는데 쓰인답니다.


마지막으로 통인시장을 거쳐 출발 지점이었던 광화문을 통과해 시청역에 도착했어요.

지하도로 내려가기 전, 카페에 들러 아주 잠깐 차를 마시며 

여전히 못다한 이야기를 급히 마무리하고

여전히 남은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지하도로 내려갔지요.

앗, 거기서 지하철을 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릴줄이야.

강변역에 도착해  괴산으로 가는 막차를 간신히 타고

깜깜해진 도로를 달려 집으로 무사귀환했습니다.


오는 길에 가물가물했던 동주의 시 두편을 완전히 외웠습니다.


'사랑스런 추억'은 동주시 중 제가 젤 좋아하는 시.


내 전생의 도반이었음이 분명한,

**씨가 손수 그린 판타지 동화 속을 탐험하고 온 기분이었답니다.








나무속 아이들 그녀의 취미


이런걸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게 한 십 삼년 전 쯤인가 싶다.
간벌한 나뭇가지를 주워와 집에 있는 고물 원형톱으로
겁없이 싹둑싹뚝~~
나무 단면을 사포로 갈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요즘엔 인터넷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당시에는 휴대폰 고리로 만들어서
이 블로그에서 몇 개 팔기도 했다.
요즘엔 뒤에 핀을 달아 옷이나 가방에 달거나
자석을 붙여 냉장고에 붙이는 용도로 만든다.
 

몇 년간 방치해 뒀다가 몇 달전 어떤 분께 선물로 드렸더니
완전 좋아하시는거다.
주변에서 다들 이쁘다고 한마디씩~

그래서 요즘 하나 둘씩 심신 안정용으로 그리고 있다.
선물로 딱이다.  


그랬더니, 어제 지오가 유치원을 쨰고 하루종일 이렇게 그렸다.
친구들한테 선물로 준다며 가방에 담아 갔다. 


나린이도 전학 온 주민이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다며 요렇게 선물을 준비했다.









그게 뭣이 중헌디? 바람의 아이들


"나린 어머니, 상황 되실 때 전화 부탁드려요."


하루 지나 확인한 문자 메시지.
내 폰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다.


'누구지??'...


전화를 걸었다.


"나린 어머니 안녕하세요."

여전히 누군지 모르겠다.


"저 죄송한데요.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아서. 누구세요?"


"어머, 번호가 저장 안 돼 있다고요?. 저 나린이 담임이에요."


헉, 이럴 수가. ~~미안하다. 나린아. 머 이런 에미가 다 있다냐~


"나린이가 모형시계 안 보여 주던가요?"


"모형시계요? 안 보여주던데, 그게 뭔데요?"


여튼 담임 선생님이 전화한 이유는 이랬다.

요즘 시간 보는 법을 배우는 중인데 나린이가 어려워한단다.
어제 시험을 봤는데 잘 이해를 못 한다고.
여러 번 설명을 해줘도 완전히 이해한 것 같지 않더라고.
한 아이만 붙잡고 오래 설명할 수 없으니 어머니가 집에서 좀 도와주시라고.

근데 그 문제가 정말 문제였다.


담임 쌤이 말해준 수학 문제인즉슨,


"지금 3시 25분인데, 그럼 지금 시간에서 1시간 40분 전은 몇 시 몇 분일까요?"


"네에? 뭔 문제가 그렇게 어려워요?"


정말 헐이다.

시계 보고 몇시 몇 분인지 알면 되는 거지 그런 걸 왜 묻냐고?
그게 뭣이 중하냐고!!!

집에 온 나린이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선생님이 몇 번이고 설명해 줬지만 정말 모르겠더라고,
나중에는 눈물까지 나왔다고 말하는 나린이.
학교에서 가져온 모형시계를 보며 설명해 주려했더니
그건 또 한사코 거부한다.

내년부터는 아이들 교과서 좀 들여다 봐야 되는건가?
뭘 배우고 아이가 뭘 어려워하는지 알고
집에서 공부 좀 시켜야하는 건가?
그런 건가?
아, 그래서 도시 엄마들이 학원을 보내는 거구나.
2년 동안 놀기 바빴던 얘한테 그런 습관을 들일 수 있나?
게다가 이제 내 말은 듣지도 않는 야생마 같은 애한테...
실은 나 또한 시간 맞춰서 아이 앉혀 놓고 공부시킬 위인은 절대 못 된다.
우리 지금은 그냥 각자 알아서 좋아하는 거 하면서 잘 놀자꾸나.



시험에 관한 이런 쓰린 기억은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난 얼마 전까지도 종은 울렸는데 수학 답안지를 못 써서 쩔쩔매다

가위눌린 듯 잠에서 깨어나는 꿈을 꾸곤 했다.

최근엔 거의 안 꾸지만...
학력고사 수학시험 마지막 다섯 문제는 주관식이었다.

풀이 과정까지 적어야 하는 그 문제가 내겐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고등학교 교실 풍경이 내 심장을 옥죄는 삭막한 모습으로 나타났고

몇십 년간 그 후유증은 꽤 오래갔다.
고3 때는 매달 모의고사 보기 일주일 전이면 어김없이 다래끼가 나는 증상도 있었다.
수능? 고거이 뭐라고... 오늘 수능 보는 아이 중에도 나 같은 이들이 있겠지.
담임 쌤이 전화로 아이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알려주신 건 고맙게 여긴다.

학기말에 담임 쌤 한테 “누구세요?” 라고 말한 어처구니없는 학부모라니...
내가 안타까웠던 건 현재 시간을 볼 줄만 알면 됐지,

문제를 만들기 위한 괜한 문제로 아이가 울먹일 정도의 스트레스를 주었다는 것,

그런 문제가 초딩 2학년 교과서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잘 푸는 아이도 있겠지만 아이가 날 닮았는지 ㅋㅋ.
앞으로 더 어려운 이런 수학 문제를 계속 만나게 될 텐데.

그 문제를 척척 푸는 방법 보다는(잘 풀면 좋지만 뇌 구조상 절대 안 되는 사람도 있는 걸.)
그런 문제를 대하는 마음과 자세를 길러줘야 겠다.
그런 공포가 인생을 오래 좀 먹지 않도록.








김장 소소한


11월 18일. 김장했다.

웃동네 농바우에 사는 S네 노지 절임배추 다섯 박스.
20키로 다섯 박스니까 총 100키로 분량.
200리터 짜리 김치 냉장고 가득 채웠다. 최다 양


재료:
                                                                    *절임 배추 다섯박스
                                                                    *무채, 쪽파, 청갓,홍갓
                                                                    *마늘 -작은 스뎅 양푼 가득
                                                                    *생강 -700그램
                                                                    *새우젓 -1.5키로
                                                                    *황석어젓 -1.8키로
                                                                    *늙은 호박
                                 *찹쌀풀 -집에 있는 스뎅 웍 한냄비
                                                                    *멸치액젓+까나리 액젓 -3키로
                                                                    *고춧가루 -대략 맞춰서
                                                                    *생새우 -대략 맞춰서 




무채는 두 딸의 몫.










Y와 함께한 주말 2 바람의 아이들


Y와 함께 한 주말 1 바람의 아이들


지난주 토요일, 거실 창 너머로 자전거를 끌고 오는 Y가 보였다.

 나린이 보다 한 학년 위인 Y양.

구릿빛 피부와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인 아이.
연년생 오빠와 고등학생 언니,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
엄마는 재작년에 돈벌러 서울 갔대요.


30분 뒤에 아랫집 언니랑 사과따기 체험을 가기로 해서 Y도 함께 데려갔다.
사실 Y는 주일학교에 가기위해 공소에 왔다가
시간이 남아서 공소 근처에 있는 우리 집에 놀러온거다.
Y는 주일학교도 미사도 빠지고 저녁까지 우리랑 실컷 놀았다. 
 
농약 안치고 사과를 키우는 청천의 가을농원.
매년 우리동네 사람들이 공동 구매로 사과를 사먹는 곳.
과수원은 나도 처음 가본다.

 
저 바구니에 사과 세 알씩 따서 담는거야.

 
한 손에 꽉차게 들어오는 묵직한 사과.
20년간의 땀과 눈물과 노동의 알흠다운 결정체.

지오 얼굴만한 사과.


사과밭 소녀들.


초록초록.
블링블링.

싱그럽구나.

5년 전 지은 한옥과 마당도 깔끔하다.
이렇게 넓은 밭을 돌보며 집도 이리 관리하다니
그저 입이 떡 벌어질 뿐.

밭주인이 30년된 사과나무를 보여주셨다.
 
나무에도 연륜이 있다.
산전수전 겪어낸 것들만이 뿜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
 담담하고 의연한 자태속에
축적된 시간과 자연이 빚어낸 고혹적인 빛깔.
그게 바로 연륜이란 거겠지.




비탈진 사과밭 옆길을 따라 올라갔다.
비경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가을농원을 나와 미원면 옥화리의 곰베사 농장으로~

여기선 애플 버터 만들기 체험.


사과 깎는 기계로 돌돌돌 사과 깎기.
옆에서 지켜보는 돌돌돌 차돌이.


사과를 쪼개서

오쿠에 넣고 비법 가루들을 조금씩 투하한 다음,
12시간 저온에서 푹 끓여준답니다.

그럼 버터처럼 부드러운 사과소스가 완성된다네요.




우린 주인장이 미리 만들어놓은 걸로 시식 시작.

아이스크림에 시럽처럼 뿌려서 먹고,

식빵에 발라 먹고,


봉지에 하나씩 애플 버터도 받아왔어요.

이런 체험도 재밌네요.
이런 체험기도 첨 써보네요.

Y와 나린, 지오의 놀이는 다음날도 계속됩니다.






어반드로잉 그림일기


명덕초등학교 주변 둘러보고 어반드로잉 하기.

초등학교 앞 허름한 가게.
아이들이 오가며 가게에 들른다.
뽑기를 하고 떡볶이랑 오뎅을 사먹는다.
가게 앞에서 주인 아줌마가 알타리를 다듬고 있다.










딱새와 소녀들,그리고 가을 미술수업


5세부터 16세까지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과 만난다. 

아직 막무가내 떼쓰는 아이부터 
보송보송 솜털의 열 살 미만 아이들
숙녀티가 물씬나는 사춘기 절정 소녀들까지
그 성장과정이 한눈에 보인다.

초등학교 여자아이는 열 살이면 '이제 어엿한 소녀구나'하고 확연히 느끼게 된다.


지난 시월 어느날.


루페를 하나씩 목에 걸고 밖으로 나갔다.


단풍나무 군락지 아래로 가을이 뚝뚝 떨어져 있었다.

확대경을 통해 한걸음 더 들여다본다.

"선생님 여기 딱새가 죽어 있어요. 수컷이네요."

평소에 새도감을 즐겨보는 채영이가 말했다. 
건물 유리창 바로 앞에 새 한마리가 떨어져 있었다.

"건물에 부딪쳐서 죽었나봐요."

"저 숲에다 새를 묻어줘야겠는데 뭘로 땅을 파지?"

"선생님, 잠깐만요."

 열 살 보연이가 건물 뒤편으로 달려가더니 모종삽을 들고 왔다.

"아까 텃밭에서 쓰던거예요." 


우리는 단풍나무 숲으로 갔다.
아이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모종삽으로 땅을 팠다.

"예쁜 잎들을 주워서 깔아주자."
 
 딱새를 잎으로 잘 싸서 땅에 묻어주었다.


고운손들로 새를 묻고 한명씩 작별 인사를 해주었다.

사철나무의 아기올빼미 씨앗.


 안녕, 가을.

 안녕, 딱새












제주책방여행기 1 길위에서


제주책방여행기 1

 

오랜만에 긴 글을 쓰고 싶어졌다.

물론 한 번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궁둥이 붙이고 내리써서 한 번에 탁하고 올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니까.

45일간 아이들과 함께한 제주 여행, 그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살에 홀로 떠났던 7개월간의 히말라야 여행, 여행에서 돌아와 누군가의 권유로 여행기를 썼었다.

날마다 일기장에 기록했던 일들을 날것 그대로 적다 보니 A4 용지 사백여 장에 달하는 분량이 나왔다.

그 이야기는 우여곡절 끝에 허니문 히말라야라는 신혼여행기로 바뀌어 5년 뒤에나 책으로 나왔지만...

아무튼 그때 원고를 쓰면서 내가 이야기하는 걸 참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 책 읽기나 발표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 말하다 보면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숨은 금방 차올랐다.

당연히 발음은 배배 꼬였다. 빨개진 얼굴로 씩씩대는 꼴이라니.

어른이 되어 모임 같은데 에 나가 말할 때도 매한가지였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하지만 글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다른 차원이었다.

누에고치에서 술술 실을 뽑아 명주옷을 짓듯 한 줄 한 줄 글로 풀어낸 이야기는

단단하게 빛나는 내 삶으로 자리잡았다.

문장을 쓸 때마다 내 머리와 몸은 과거의 나와 끊임없이 조우하며 좀 더 근사한 나로 향해갔다.


일상에서 5일이란 시간은 그냥 그렇게 흘러가지만, 여행지에서의 5일은 굉장히 밀도 있는 시간이다.

눈뜨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무수한 만남과 사건으로 시간은 촘촘히 꿰어진다.

잠들어 있던 감각이 활짝 열린다.

무엇이든 반짝반짝 빛나 보인다.

그게 바로 여행자의 시선이니까.


제주 여행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대학 4학년 때 졸업여행으로 처음,

두 번째는 연애하던 남자친구와 함께,

세 번째는 2년 전 친정 식구들과 삼일은 함께, 나머지 일주일은 나와 아이들만 남아서 여행했다.

네 번째는 올봄에 시댁 식구들과 함께한 효도 관광.

 

이번 여행은 제주에 사는 오디 언니의 전화 한 통화로 시작되었다.

10월에 하루 방 잡아 줄 테니 청산언니랑 같이 오라는....

청산별곡과 오디. 우리는 풀꽃 세상이라는 환경단체에서 만난 풀씨 자매들이다.

청산 언니는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나비날다책방다괜찮아 요일가게

 ‘생활사전시관(빈티지가게)’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언니는 목요일에 하루 먼저 제주로 갔고,

나와 아이들은 금요일 저녁 청주발 1915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책방지기언니와의 동행으로 뜻하지 않게 제주책방순례를 하게 되었다.

제주도에는 서른 개가 넘는 동네책방이 있다.

아이들의 원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갑 털려가며 시작된 책방여행기.









제주그림여행3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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