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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와 베드맨턴 소소한



작년 이맘때 저녁이면 두 딸과 자전거를 탔다.
저녁 식사후 7시에서 7시 반 사이. 
살랑살랑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노을이 질 무렵 
우린 각자의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논길도 달리고 억새가 숲을 이룬 강둑길도 달렸다.
라이딩은 올해도 이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버섯집으로 가면 몇몇 이웃과 만났다.
굳이 시간을 정해 약속하지 않아도 아이들과 함께 나온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요즘에는 그들과 베드맨턴을 친다.
어제는 봉희씨네 모녀, 혜윤네 식구 3인, 민선이네 3인, 우리 3인. 모두 열한 명이 모였다.
요즘에는 베드맨턴 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나린이랑 나랑, 지오랑 혜윤이 짝이 되어 복식으로 치다가 
둘씩 치다가 파트너를 바꾸며 치기도 한다.
한참 재미나게 치다보면 어느새 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진다.
흰 공을 쫓아 요리조리 뛰어다닌 몸에서 땀이 흐른다.
운동으로 흘린 땀을 바람이 거두어가면 마치 계곡 물 속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 
몸은 가볍고 개운해진다.
주거니 받거니 둘이서 온몸으로 나누는 대화. 
이 맛에 중독되어 한동안 베드맨턴을 계속 칠 것 같다.

"그래, 잘했어. 옳지. 어어~ 받아. 깔깔깔~ 까르르~"

마을 한 가운데서 우리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내일 만나, 잘 가. 잘 자!"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으면 각자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간다.
소중한 이웃들. 내일 다시 만나요.
내일도 웃으면서 같이 운동해요.


 

당선이 취소되었습니다. 소소한

지난 몇 달간 초등학생인 두 딸과 집안에서만 지내며 종일 EBS 라디오를 들었다.

엄마, 윤고은의 북클럽 할 시간이야.” 정오가 되면 둘째 딸이 알려줄 만큼 나와 딸들은 이 프로그램의 열렬한 애청자가 되었다. 작가들이 나와 글쓰기 팁도 알려주고, 책 소개도 해주고 낭독도 해주니, 말로 글쓰기를 배우고 귀로 책을 읽으며 낭독의 즐거움도 발견하는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개학이 거듭 연기되던 4월부터 공모전 소식이 흘러나왔다.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라는 주제로 EBS와 브런치가 함께 글을 공모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무심히 흘려들었다. 공모전이라니. 경품 이벤트는 여러 번 도전해봤지만 공모전은 나와 거리가 먼 단어였다.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서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매일 듣다 보니 어느 순간 귀가 솔깃해졌다. 윤고은 디제이의 나긋나긋한 음성이 너도 도전해 봐,’ 하며 자꾸 부추기는 것 같았다. 마침 써 놓은 것 중에 주제와 부합하는 글 한 편이 떠올랐다. 노트북을 열어 참여방법을 살펴봤다.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를 주제로 글을 쓰고 브런치에 발행하면 된단다. 전부터 이 플랫폼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참에 시작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우선 이곳에 첫 글을 발행하고 브런치 작가로 입문했다. 그리고 응모할 두 번째 글을 적은 다음 나도작가다공모전 키워드를 선택하고 발행 버튼을 눌렀다. ‘이게 이토록 설레는 일이구나.’ 저 우주에 작은 씨앗 하나 쏘아 올리는 심정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플랫폼이라 제대로 응모가 된 건지 몇 날 며칠 자꾸 의구심이 들며 결과 발표만을 기다렸다.

 

공모전에 응모한 글 솔멩이골을 그리다’ https://brunch.co.kr/@hsj511eldb/4 2년 전, 내가 사는 마을에서 이웃들과 진행한 그림책 만들기 수업에 관한 이야기이다. 첫 도전이었고, 녹록지 않은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런 만큼 책이 나오고 그림 전시를 겸한 출판기념회를 마쳤을 땐 누구보다 뿌듯했다. 드디어 결과를 발표하는 날, 오후 5시 반쯤 브런치에 연결된 이메일로 당선을 축하드린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메마른 사막에서 단비를 맞는 기분이 이럴까? 몇 달간 집안 살림에만 묶여 지내던 내게 누군가 던져준 깜짝 선물 같았다.

 

메일에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요청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라디어 녹음 일정에 관한 거였다.

'EBS 라디오 방송국에 가서 내 글을 낭독한다고? 와우' 내가 선택한 시간은 오전 11.

그렇담 집에서 6시에 출발하는 거야. 증평에서 버스를 타고 동서울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일산으로 가는 거지. 지하철 말고 버스를 타고 갈까? 아니야. 증평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갈까? 간 김에 파주 출판단지에 들러 친구도 만나자. 인천에 가서 아는 언니가 하는 책방에도 놀러 가야지

언니, 그냥 차 갖고 가자. 우리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자.”

이웃에 사는 친한 동생한테 함께 놀러 가자 했더니 본인이 차를 운전하고 가겠단다.

그래, 좋아 좋아. 렛츠 고! ”

일 년에 한두 번 서울구경을 할까 말까 한 애 딸린 촌년들, 둘 다 아주 신이 났다.

 

당선 메일을 받고 며칠 뒤, 라디오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녹음 일정 확인했고요, 근데 충북문화재단 사업으로 낸 책에 실은 글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메일에 적힌 마지막 질문은 이랬다. '당선된 글이 브런치북이나 출판사 등에서 기존에 출판된 글이거나, 입상한 적이 없는지 다시 한번 여쭤봅니다.' 이 질문에 난 다음과 같은 답변을 적어 보냈더랬다. ‘충북문화재단 사업으로 20권 독립 출판하였고, 마을 안에서만 소량 판매했습니다.’라고. 그랬다. 그 글은 마을 주민들의 책 만드는 과정을 그림책으로 엮은 내 책에, 에필로그로 실은 글을 수정해서 보낸 거였다.

 

(문자) 논의를 진행하였으나 출판된 글은 당선작에서 제외됩니다. 2,3차 공모전에 다시 도전해주세요안타까운 답변을  드려 죄송합니다.

(문자) 출판사도 아니고 출판 등록도 안 한 책인데. 흠흠 재고의 여지는 없을까요입에 물고 있던 막대 사탕을 뺏긴 기분이다. 하지만 비굴하다.

(문자) 지역 안에서 마을 주민과 함께 책 만든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픈 맘이 커서 내심 기대 많이 기뻐했는데부탁드려요. 아 진짜 진상이다. 이 문자는 왜 또 보냈을까?

(문자) 네 저희도 내용을 잘 파악하고 논의해봤는데요. 독립출판으로 진행되었더라도 출간된 글이라 조금 힘들 것 같습 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촌 아줌마의 서울 여행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문자를 곱씹으며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간과한 진실과 마주했다. 그림책 만들기 수업 진행은 내 첫 도전이었다. 이웃들이 만들어낸 책을 보며 그들의 글과 그림에 박수 쳐주고 무한 격려를 보냈지만, 정작 내 첫 독립출판물에 대해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책 취급을 안 했던 것이다. 더 제작해서 독립서점에 입고할 계획도 있었지만 인쇄되어 나온 책을 보고 포기했다. 글도 그림도 너무 후져 보였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웠다. 그렇게 묻어버린 책이었기에 출판된 글이라는 자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당선 취소 소식은 마치 이렇게 들렸다. '당신은 이미 그 글로 자신의 책을 만들지 않았나요? 그러니 응모해서 다시 책으로 내지 않아도 돼요. 이미 그걸로 충분해요.

드로잉 수업을 하며 내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잘 그린 그림에 대한 과도한 기준을 설정하지 마세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 고유의 것을 찾으세요. 지금 그리는 그림은 여러분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니 자신감을 가지세요. 그건 언제나 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야심 차게 계획했던 서울 여행은 물 건너갔지만 나도작가다공모전 덕분에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그걸로 족하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이제는 좀 나를 다독여 주라고, 엄격한 잣대는 그만 걷어 치우라고. 내안의 말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당선 취소가 안겨준 값진 선물이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드디어 개학! 소소한


오랜만에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내고 돌아선다.

반짝거리는 아침이다. 오월의 햇살이 닿은 모든 것이 눈부시다.

얼마 만에 홀로 맞이하는 아침인가?

아이들 개학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 쓸쓸한 기분은 대체 뭔지.

 

 "여러분 친구들하고는 1m 이상 거리를 유지하고, 급식시간에 먹다 남은 음식도 친구에게 나눠주면 안 돼요."

 

어제 나린이 담임선생님이 화상 수업을 하며 중대본과 교육청에서 내려온 지침을 아이들에게 일러주었다그동안 친구들이 남긴 급식 디저트는 모두 나린이 차지였는데 이제 그것도 못 먹게 되었구나.

 

 

 "주말에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안 돼요?" 


 **이 목소리다. 이 녀석, *이네 자주 놀러 가는 거 다 안다

지난주에도 *이네 근처 개울가에서 물놀이했으면서... 전교생이 40명도 안 되는 시골 초등학교다마을 안에서 친구들과 늘 부딪치며 놀던 아이들에게 이 코로나 사태는 더욱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불특정 다수가 모여 사는 도시가 아니어서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이 덜했던 것도 사실이다다들 뉴스를 통해서만 심각성을 인지했다그런 아이들이었기에 학교에서 종일 마스크 쓰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내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마스크 쓰고 가고 되도록이면 떨어져서 놀아요." 


말을 전하는 선생님도, 받아들이는 아이들도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린이는 방학 동안 거의 집안에만 있었다햇빛을 보지 않아 얼굴이 창백해서 푸른곰팡이가 슬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열두 살 사춘기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오전 열 시가 넘어도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개학하면 과연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오늘 일찍 일어나 평소에 거르던 아침밥까지 먹고 학교에 갔다어제까지만 해도 "학교 가기 싫은데 마스크까지 쓰고 가야 하다니." 했던 나린이었다.

 "그러게 제때에 갔어야지. 이제 가기 싫어졌잖아.” 

옆에 있던 동생 지오도 한마디 했다. 그랬던 아이들이 오늘은 상기된 얼굴로 일찍 집을 나섰다아이들은 잘 적응했다. 문제는 나였다. 아이들을 보내고 돌아서자 힘이 탁 풀렸다요 며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내 일상이 제일 엉망이었다

아이들 핑계로 아침밥은 거르기 일쑤였다. 활동이 줄어든 아이들도 밥 달라고 조르지 않았다배고프다면 마지못해 밥상을 차렸고 아이들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오늘부터 5대 영양소가 고루 들어간 급식을 제 때에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이제 내 일상을 회복해야지.

   

아이들이 없는 아침. 마당으로 나가 텃밭의 풀을 뽑고 작물에 물을 주었다샤샤샥~ 오월의 바람이 스치고 가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아카시아 향이 실려왔다. 이 향긋한 냄새와 바람을 느낄 수 없는 아이들오랜만에 본 친구들과 살을 맞대고 놀 수 없는 아이들. 어쩌면 이건 어른들의 지나친 염려일지도 모른다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을 잘하니까. 저 초록잎처럼 싱싱하고 반짝이니까그런데 왜 반짝이는 것들을 보면 울컥해지는 걸까.  





내년 봄에 또 만나. 소소한


보슬비 내리는 아침, 뒷산을 오르다가 각시붓꽃을 만났다.

이슬방울 머금은 꽃은 깊은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그 새초롬한 모습에 반해 욕심이 발동했다.

 

저 꽃을 캐서 우리집 마당에 옮겨 심을까?’

 

집에 돌아와서도 온종일 꽃을 생각했다

결국 어린 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면 안 돼. 거긴 개네 집이야.

여기 데려오면 엄마가 없잖아.

엄마가 엄청 속상해 할 거야. 절대 안 돼.“

 

다섯 살 나린이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절대에 힘을 주고...

 

집 지어 이사하기 전에 3년 반 정도 임시로 지낸 집이 있다

마당을 나와 조그만 계곡을 건너 산으로 오르는 조붓한 길에서 이 꽃을 처음 보았다

꽃과 눈이 마주쳤을 때, 숨이 멎을 뻔 했던 그 설렘을 나는 잊지 못한다.

첫째 아이가 배밀이를 할 무렵이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시골로 왔지만 이듬해에 태어난 아이를 온종일 혼자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살이 쪽쪽 빠지고 다크 서클이 얼굴 전체에 번질 만큼 힘겨운 나날이었다

서른여섯, 늦은 출산이었다

아기가 낮잠에 들면 후다닥 숲으로 달려가 오솔길을 걷는 게 나의 유일한 쉼이었다

이것도 그나마 힘이 붙어있을 때라야 가능했던 일

4월 하순께 그날도 봄 햇살로 부스스한 얼굴을 씻으며 숲길로 접어들었다.

걸음걸음 바스락대는 내 발소리가 들렸다. 봄 숲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가의 얼굴 같았다.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소나무 사이를 통과한 햇살을 받으며 발밑에 피어있던 각시붓꽃.

 

어머나!’ 하고 놀라던 내 시선과 아 들켰네.’ 하며 수줍게 바라보던 꽃과의 첫 만남이었다.

꽃을 감싸고 있는 가늘고 뾰족한 초록잎들이 봄바람에 살랑거렸다.

 

꽃봉오리 모양이 붓을 닮아서 붓꽃이라지.

작게 자라는 각시붓꽃은 수줍은 색시 같아서 그렇게 부른다지. 애기붓꽃이라고도 한다지.

그냥 보랏빛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색이다

연보라, 짙은 보라, 분홍보라, 파랑보라, 꽃잎 하나에도 각기 다른 농도와 색감의 보랏빛이다

잠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만 알 수 있는 자연이 만든 색이다.   

 

그 집을 떠나 옆 마을 산 밑에 집을 지어 이사했다

주변이 온통 마사토라 마당은 거름기 없는 모래밭이나 다름없었다

빈 마당에 거름을 주고 꽃모종을 사서 이 꽃 저 꽃 참 많이도 심었다

심지어 뒷산에 핀 양지꽃과 제비꽃을 옮겨심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임을 알게 되었다

냉이와 쑥을 비롯해 씀바귀, 토끼풀, 지칭개, 민들레, 제비꽃 등 

온갖 풀꽃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해마다 싹을 틔웠고, 여름이면 무성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사람이 곁에 두고 가꾸지 않아도 때가 되면 그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있다

그래서 야생화라 부르는 거겠지

그 계절에 그곳을 지나는 자만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알아보는 자에게만 허락된 은밀한 기쁨이다.

 

나린아, 알려줘서 고마워. 내년 봄에 숲에서 또 만나면 되지.‘

 




온라인 개학 바람의 아이들

온라인 개학 덕분에 아이들 기상 시간이 한 시간 당겨졌다.

9시에 일어나 바로 컴퓨터를 켜고 학습을 시작한다.

나린이가 데스크탑, 지오는 노트북을 켜고 담임샘이 공지사항에 올려놓은

과목별 동영상을 시청한 뒤 교과서 문제를 푸는 식으로 진행한다.

엄마, 이거 어떻게 풀어?”

 

초등 5학년 딸이 보여준 수학 문제

*다음 사칙연산 식에 알맞은 문제를 만들고 해결해 보세요.

60÷(5×3)

 

. 말문이 막혔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머릿속에선 빈 말풍선만이 동동 떠다녔다.

예시문을 여러 번 읽어본 후에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온 한 친구가 수학정석을 공부중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린이가 세 살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수포자의 길을 걸어온 난 정석이란 말만 듣고도 정색했다

뭘 그렇게 까지 하냐며.

고작 초등 5학년 수학문제에 머리가 하얘지니 앞날이 아득하기만 하다.

 

지난 주 첫째 아이의 온라인 개학 이후, 이번 주 월요일부터 둘째 아이의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었다

이제 양쪽에서 딸들의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학습이 없었다면 아마 아이들이 뭘 배우고 뭘 어려워하는지 전혀 모르고 지나쳤겠지.

 

선생님들이 온라인에 떠도는 동영상을 골라 그저 카피해서 올린다는 지적과

온라인 수업 영상과 게임창을 함께 띄우고 게임에 몰두하는 학생도 많다며 

학생의 수업태도까지 관리하기 어렵다는 부작용과 함께 자신의 책임인 것 같아 속상해하는 

맞벌이 부모의 걱정 어린 기사

나름 성공을 거둔 학교의 사례까지 온라인 수업에 관한 다양한 기사들을 접한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 또한 익숙해지는 건가?

대체 개학은 오는 건지?

이러다 교사라는 직업은 사라지고 온라인학습이 쭉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아찔한 상상이 드는 요즘이다.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실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릴 뿐.

그 넘치는 기운과 맑은 에너지를.

설마 그것마저 망각하게 되진 않겠지.

아찔하다.




자연이 부르는 시간 소소한

다른 때 보다 일찍 눈이 떠지는 날이 있다.

알람을 맞춰 놓은 시간까지 더 자야지 하며 계속 누워있지만 눈은 말똥말똥.

자연이 부르는 시간이 온 것이다.

어서 일어나 들판을 달리라고.

지금 이 시간의 하늘과 공기와 자연의 색을 온몸 깊숙이 꼭꼭 새겨두라고.

그럴 때면 지체 없이 일어나 당장 문을 박차고 나가 아무데나 달린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비오는 밤에 혹은 비 내린 직후에

무언가에 홀린 듯 달리기를 한다.  

 


아이들은 두어 시간 뒤에나 일어날 것이다.

재빨리 트레이닝 바지로 갈아입고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다.

몸속에 스미는 아침 바람이 기분 좋게 알싸하다.

다못골 다리를 건너 양계장을 지나 지드기마을로 향했다.

마지막 집을 지나 급경사를 휘돌아 내려가면

우측으로 강을 낀 한적한 둑길이 나온다.

작년 여름, 저녁마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로 달렸던 길.


자전거를 벚나무 앞에 살짝 기대어 두고 달리기 시작했다.

내 키보다 훨씬 큰 마른 갈대가 숲처럼 우거져 있는 강둑길.

물오른 관목림에 연둣빛 새순이 올라왔다.

아가의 살결처럼 연하고 보드라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빛깔의 연두다.

이 빛깔과 조화를 이루는 봄꽃들이 줄지어 피어있다.

새하얀 조팝나무, 돌베나무, 개복숭아나무, 벚나무, 홍매화...

나무에 핀 꽃송이들로 길이 환하다.

초록빛 강물 위를 헤엄쳐가는 청둥오리 두 마리가 보인다.

저마다 다른 소리로 아침을 노래하는 새들.

온몸에 신선한 기운을 가득 담고 집으로 돌아온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일 년 365,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횟수.

지금 이 시간만큼은 당장 밖으로 나가서 달리라고

자연의 부름에 몸이 화답하는 시간이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중에서

 


지오의 꿈 바람의 아이들


(지오의 꿈)

-엄마 나 꿈이 바뀌었어.
 배우 될래.

*언제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졌는데?

-기생충 영화가 상 받는거 보구.



서너 살 때는 라푼젤처럼 되는 게 꿈이었다.
머리카락이 좀체 자라지 않았던 지오는
언니 스타킹을 비롯해, 수건, 스카프, 치마 달린 바지,
땋은 머리가 달린 털모자, 하늘하늘한 아사 커텐까지...
머리에 쓸 수 있는건 모조리 뒤집어 썼다.
마치 제 머리카락이라도 되는 양 애지중지 하며
잠들 때도 벗지 않았다.
이마에 땀이 주루루 흐르는데도 말이다. 

나이를 한 살씩 먹으면서 지오의 꿈도 구체적으로 변했다.
미용사, 서점 주인, 크리에이터, 작가

'나의 미래' 라는 제목으로 1년 전(9세) 쓴 일기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내가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나는 주로 먹방을 했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영상은 닭고기 먹는 영상이었다.
그리고 올해 구독자는 2만명이 되었다.
또 나의 직업은 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됐다.
책을 네 권 밖에 못 만들었지만 그래도 한 권 한 권 다 인기가 있었다.
그 중에서 두 권은 시리즈가 있는 책이었다.
올해 3권도 만들 예정이다.
3월 달에 시리즈 3권이 다 만들어졌다.
그후로 대박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최근에 만들어진 시리즈 3권이 9쇄나 팔렸다.
정말 좋았다.
다음에 1억원을 번 다면 잔치를 하고 싶다.

크리에이터와 작가에서 배우로 바뀐 꿈.
한동안 떠들썩하게 보도된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구나.
나도 발레리나, 뮤지컬 배우 뭐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지.
주인공에 감정이입하며 영화나 드라마에 푹 빠진 적도 많았고.
앞으로 또 어떤 꿈을 꾸게 될지 변화무쌍한 지오의 꿈.

-엄마, 나 배우하면서 내가 쓴 일기들을 모아서 책도 낼거야.

앞으로 또 어떤 꿈을 꾸게 될지.
 


  



나린이 숙제 바람의 아이들


온라인 숙제1)

내가 얻고 싶은 초능력 한가지와 그 이유

나린이 담임 샘이 주제 글쓰기로 온라인 학급방에 내 준 숙제.

 

나린이가 쓴 글

-내가 얻고 싶은 초능력:예지 능력

-이유: 멋있고 신비롭고 재밌을 것 같아서.

그리고 예지 능력을 얻으면 타로 점집을 차려 사람들의 미래와 마음을 읽어주고 싶다.

 

온라인 숙제2)

나의 단점을 쓰고 그 단점의 장점 써보기

나린이 답변:단점이 있으나 그 단점의 장점을 찾을 수 없어서 쓰지 않겠습니다.


일요일 아침. 주절주절 소소한

오리무중인 개학.

사회적 격리를 강조하는 재난 문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여전히 전송된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온라인 학습이 시작되었다.

E학습터 안에 담임교사가 만들어 놓은 학급으로 들어가 올라온 강의를 듣고 과제를 수행하면 된다.

지오랑 같이 동영상을 보며 문제를 푼다.

아이들이 어떤 수업을 듣는지 알 수 있는 장점은 있구나.

언젠간 이런 방식의 수업이 쭉 이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나씩 받아들이게 되는 새로운 것들.

그런 것들에 익숙해지며 우린 점점 오래된 미래와 멀어지는 미래로 가는거지.

 

오전 열시가 넘었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잠속에 있다.

덕분에 지오는 키도 많이 크고 살도 통통하게 올랐다.

 

일어나도 할 게 없잖아.”

 

이제 좀 시간을 당겨서 일어나라는 말에 아이들이 항변한다.

나도 달리 대꾸할 말이 없다.

나 어릴 때처럼 둥근 계획표를 만들어 시간별로 계획을 짜는 게 무슨 소용이람.

그걸 몇 년 반복한 결과의 부작용을 아직도 겪고 있는 내가 아닌가.

여전히 무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고 괴롭힌다.

나도 늘 길을 잃고 휘청거리는데 아이들에게 뭘 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종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해야지.

 

멈춤 호흡 차 마시기. 독서와 글쓰기.

 

덕분에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

 

스마트폰 SNS 유투브

지구인들은 가까워진 걸까 더 멀어진 걸까?

나는 왜 SNS를 하는가?

숨고 싶은 욕망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이의 끝없는 딜레마.

카톡을 모조리 끊어버려?

스마트폰을 없앨까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삶.

 

이제 애들 깨워야지,

그리고 남은 봄을 즐겨야겠다.




홑잎나물, 계곡 족욕 바람이 머무는 뜰


(그림일기)

‘홑잎나물 따러 가자.’


웃마을 사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살랑살랑 걸어서 대야산 초입에 도착.
친구네 오미자 밭을 지나
마른 관목수풀을 헤치고 들어서니
연초록 세상이 펼쳐졌다.


화살나무 가지에 돋아난 작고 여린 새순.
홑잎을 손으로 훑으며 보자기에 담는다.
옆에서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시원하다.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 물가로 가 보았다.
신발을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온몸이 저릿저릿 말갛게 헹구어지는 기분.


뜯어온 나물을 흐르는 물에 살살 씻어
소금물에 살짝 데친 다음
들기름과 액젓을 넣어 무쳤다.
보드랍고 연한 봄의 맛.
말랑말랑한 아가 속살에 얼굴을 부비는 맛.


오늘 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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