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 쓰는 일기 소소한

(이런 느낌 오랜만)

감정의 양극단을 롤러코스터 타 듯 오르내린다.
몸이 무거운 건지
생각이 무거운건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
뭘 해도 끝없이 허하기만 한
이 마음의 실체는 대체 무엇인지.....
2019년 6월은 내게 그런 계절이었네.


(버섯집 라이딩)

마을 가운데 있는 삼송 폐교 자리에 들어선 건물을
사람들은 모두 버섯집이라 불렀다.
요즘 저녁마다 이곳으로 운동을 하러 다닌다.
오래 전 마을분들이 십시일반 땅을 기부해 학교가 만들어졌다.
입학하는 아이들이 하나둘 줄면서 폐교가 됐고,
폐교는 권역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에서 수십억 지원을 받아
버섯 모양의 요상한 건물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권력과 자본을 쥔 이 지역 유지들이 사업의 주도권을 손에 쥐며 벌어진 일이었다.
계획도 기획도 대책도 없이 비리와 부실 시공으로 범벅이 된 공사는
좀체 마무리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한없이 늘어졌다.
폐교를 리모델링 하면 될 것을
송이 버섯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고
버섯 형태 그대로 건물을 짓는
아주 몹쓸 단순함과 대범함이란....
거대한 쵸코송이 네 개가 합체된 모양의 건물은
오가는 마을 사람들 입방아에 연신 오르내렸다.
저 건물을 폭파시켜야한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몇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가끔씩 일하는 인부들이 보였다.

그곳으로 지오랑 자전거 타고 저녁 운동을 나간다.
앞산에 반쯤 걸린 해가 붉은 빛으로 동네를 감싸 안는 시간.
다못골 다리를 건너 밭두렁 논두렁 길을 지나 노을 속을 달린다.
이곳은 마을을 관통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운동장이 있던 터라서 정 가운데 서 있으면 탁 트인 기분이 된다.
오랫동안 아이들이 뛰놀던 기운이 서려 있어선지 마음이 무척 편해진다.
이런 공간을 망쳐 놓은 사람들이 저주스러울 따름이다.

자전거로 운동장을 몇 바퀴 돌다가 강둑 길을 따라 삼송리 마을을 둘러보곤 한다.
저녁 햇살을 받은 수면 위에서 물고기들이 반짝이며 튀어 오른다.
갈대와 온갖 풀들이 키 만큼 자란 둑길을 쌩쌩 달린다.
지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긴 생머리 휘날리며 야무지게 페달을 밟는 딸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간직해야지.
선주네 집 앞을 지나며 담장 너머 마당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다.
지오의 절친인 서연이를 만나 함께 놀기도 한다.
이렇게라도 이 공간을 열심히 드나들리라.
몹쓸 어르신들이 망쳐 놓은 이 공간에 우리의 기운을 뿜뿜뿜 퍼뜨려야지.
자주 와서 놀다보니 흉물스럽게만 느껴지던 버섯집도 정겨워 보인다.
거대한 스머프가 문을 열고 나와서 '안녕'하고 인사를 건넬 것만 같다.
운동장 둘레를 몇 바퀴 달리고 스트레칭을 하고나면 주변은 금새 어두워진다.
"엄마, 어두워지니까 시원하다."
자전거를 맘껏 타고 난 지오가 생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한다.
어둠이 더 깊어지기 전, 개구리의 청량한  떼창을 들으며
힘껏 페달을 밟고 집으로 돌아온다.


(개망초)


엊저녁엔 오랜만에 나만의 산책로를 다녀왔다.
한살림 박재일 회장의 무덤이 있는 곳.
그동안 잘 관리되던 그곳은 망초밭으로 변해 있었다.
해거름에 보는 개망초 밭은 메밀꽃 군락지처럼 아름다웠다.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듯 들리며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하면 자동반사로 떠오르는 '메밀꽃 필 무렵의 한구절.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 대신

진짜 짐승의 소리, 고라니 울음소리가 사납게 들려왔다.

이제는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도 덩달아 떠오른다.

한밤에 메밀밭을 배경으로 김고은이 공유의 가슴에 검을 꽂는 장면.

보름달 뜬 밤에 오면 진짜 메밀밭으로 보일 것 같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망초밭 하면
천명관 소설 '고래'에 나오는 춘희가 생각난다.
폐허가 된 벽돌 공장에 홀로 남은 엄청난 괴력의 춘희,
뱀을 잡아먹으며 허기를 달래던, 고독한 야생의 춘희가......
한때 영화를 누리다 망해버린 벽돌 공장 주변은 개망초 꽃으로 가득했다고,
망해버린 자리에 피어나는 꽃이라 망초라는 이름이 붙은 거라고 그 소설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인적이 끈긴 공간을 삽시간에 뒤덮는 괴력의 풀이 바로 개망초.

그래서 개망초 군락지를 보면
낭만과 외로움과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초경 이후 바람의 아이들

나만 드나드는 비좁은 세탁실.

찌그러진 양은 대야에 피 묻은 팬티가 물에 잠겨있다.

'나린이가 또 시작했구나.'

보통 초경을 하고 나서 1년 정도는 주기가 불규칙하다고 하는데

나린이는 4월에 첫 월경을 하고 벌써 세 번 째다.

올해 들어 조만간 시작하겠거니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작년 초에 젖멍울이 생겼고

정수리에서 호르몬 냄새가 심하게 나더니

여름 나무처럼 자고 일어나면 키가 쑥쑥 자랐다.

3개월 전, 속옷을 손으로 빨다가 검붉은 피가 묻은 나린이 팬티 더미를 발견했다.

이미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뒤였다.

 

'시작했는데 엄마한테 말도 안했네.

대체 어떻게 하고 학교를 다닌 거야?

학교에서 초경에 대해 배우긴 했나?

열한 살짜리가 얼마나 놀랐을까?‘

 

그날 저녁 씻고 나온 나린이에게 말을 걸다가

월경에 관한 모든 대화를 거부당했다.

마침 집에 있던 초경파티사춘기 소녀라는 책을 건넸는데

그마저도 손을 내저으며 필요 없다고 거부했다.

충격이었다.

중학생 두 딸이 있는 아랫집 언니에게 연락해

위생팬티와 순면생리대를 부랴부랴 얻어왔다.

다음 날, 읍내에 나가 케이크와 장미꽃 열한 송이를 사고

한살림에 들러 천생리대 세트를 사가지고 왔다.

말로 전하지 못한 건 글로 써서 편지와 함께

장미, 케이크, 생리대가 든 선물 꾸러미를 건네주며 초경파티를 해줬다.

 

학교에 가서 담임 샘()과 이 문제에 대해 상의를 했다.

선생님은 나린이 3학년 담임이기도 했던, 보건 담당 강**샘에게

나린이와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겠다고 하셨다.

며칠 뒤, 담임 샘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나린이 어린이는 강** 선생님과 상담 후에 밝은 얼굴로 돌아와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초경 무렵에 나린이의 짜증과 변덕은 하늘을 찔렀다.

원래 잠이 많은 아이였는데 더 깊이 더 많이 잠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두 번째 생리가 터졌다.

그때 나린이 태도는 완전 달라졌다.

먼저 피 묻은 팬티를 내게 주더니

엄마, 이거 어떻게 해?”

아주 상냥하게 물어왔다.

, 그거 저기 세탁실 대야에 물 받아서 담가둬. 피는 찬물에 담가둬야 하거든.

엄마가 지난번에 사준 생리대 있지? 그거 빨아놨으니까 집에서는 천 생리대를 써.“

난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나긋하고 포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생리대 처리 방법을 알려주었다.

, 알았어.”

한 달 전과 달리 나린이는 내 말을 끝까지 경청하며 아주 부드럽게 대답했다.

, 사이좋은 모녀!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마치 늑대가 양으로 변신이라도 한 듯,

나린이는 너무나 친절하고 다정하게 나를 대해 주었다.

그리 오래가진 않았지만…….



나린이가 생리통증으로 내 침대에 누워 잠든 어느 일요일 오후,

올해 폐경을 맞은 나도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누워서 잠든 나린이를 바라보았다.

나의 월경을 딸에게 토스하노라~

피로 맺어진 모녀의 연대가 시작되는,

묘하고 뭉클한 순간.

달은 또 차고 차올라 세 번째 월경이 시작된 날.

이젠 혼자서도 알아서 척척 이다.

단 저 빨간 물에 담긴 팬티와 생리대를 보며 고민 중이다.

저걸 스스로 빨게 해? 말아?

초등학교 때까지만 빨아줄까?

난 스스로 했었나?


"나린아, 저거 네가 빨래?"

"싫어."

"그럼 중학교 가면 네가 빨아."

"알았어."


다음날 거실에 있는 빨래 건조대에 세탁한 생리대가 걸려 있었다.

"나린아, 네가 빨았니?"

"응"


여지껏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생리대 쓸게 없어서 빨았어."

별 거 아니라는 듯 쿨하게 대답하는 나린이.

나도 감정을 애써 누르며 아주 쿨하게 대답했다.

"그랬구나. 잘했어. 고마워."





 


그림책 읽어주는 아이 바람의 아이들


밤마다 아이들 끼고 앉아 그림책을 읽어주던 시간이 있었지.
지금은 딸이 나를 위해 그림책을 읽어준다.
목소리 연기도 곧잘 한다.
자주 읽어달라고 졸라야지.



나린이는 그림책에서 학습만화의 시절을 지나
여중생A와 걸크러쉬를 읽더니
요즘엔 로맨스 소설을 탐독한다.
텍스트만으로 꽉찬 두꺼운 책을 읽고 있길래 봤더니
20대 작가가 쓴 세권짜리 로맨스 장편소설.

저녁 먹고 나면 일찌감치 씻고
 9시 전이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던 아이가
밤늦도록 손에서 책을 못 놓더니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마저 읽고 등교했다는...








책과 도서관 소소한

*
올해 솔멩이골주민 책만들기 수업도 중반을 넘어섰다.
8월 말까지 원고와 그림 마감이다.
작년에는 각자 한 권씩 그림책을 완성했는데
올해는 10인의 이야기를 한 권의 그림 에세이로 엮을 예정이다.
10년 전에 만든 솔멩이골작은도서관 카페를 다시 부활시켰다.
그곳에 각자 쓰고 있는 글과 그림을 올리고 있다.
오늘도 카페에 올린 글을 프린트 해서 각자 자신의 글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그림을 어떻게 편집하면 좋을지 즉석에서 생각하고
누군가 아이디어를 보태고...
작년에 한 번 전 과정을 경험하고 나니 수업이 좀 수월해졌다.
어리버리했던 강사가 뭘 좀 알고 나니
사람들의 참여나 몰입도도 좋아졌다.
내가 왜 이걸 또 시작해서 개고생이냐 하다가도
그걸 금새 잊게 만드는 대단히 짜릿란 순간과 조우한다.
늘 극과 극을 오간다.
이 간극이 좁아지면 프로의 반열에 오르는건가?
내 개인 책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모두 즐겁다.
혹은 대단히 고통스럽다.
창작은 이 둘의 끊임없는 반복인 듯.


*
초롱이네도서관 오혜자 관장님이 송면어린이집으로 강연하러 오셨다.
10년 전, 솔멩이골작은도서관을 만들 때 우리의 롤모델이었던 초롱이네,
그때 돌도 안 된 아기 업고 청주까지 견학가서 만났던 관장님.
책과 도서관으로 맺어진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문화재단사업으로 진행하는 책만들기 수업 코디네이터도 이 분.
다음 주에는 책만들기 수업 모니터링도 하러 오신다.
북스타트코리아에서 작은도서관을 위해 무료로 진행하는 강연을 신청했더니
우리도서관도 선정됐다.
대상이 유아 자녀를 둔 부모여서 어린이집을 연결해 주었고
내가 소개해준 강연이라 안 가볼 수가 없었다.
총 네 번의 강연 중 두 번은 오혜자 관장님이,
나머지 두 번은 황진희 선생님이 오셔서 해주기로.
2년 전,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으로 맺은 황진희 선생님과의 인연도 이렇게 계속될 줄이야.
어린이집도  지오가 그만두고 4년 만에 처음 가봤다.
오랜만에 그림책에 관한 강연을 듣고 나니
다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었다.
아니, 이번에는 내가 위로 받기 위해 누군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듣고 싶었다.

-지오야, 엄마 그림책 읽어줄래?
-알았어
씻고 나온 지오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히 OK

오늘 지오가 읽어 준 책은 '엄마는 해녀입니다'
내일은 아이들이 아침 먹는 동안 그림책을 읽어줘야지.


*
작년에 이어 괴산군에서 주는 도서지원비 오백만원을 또 받게 됐다.(야호~~~)
책 쇼핑 마구마구 해야지.
땀언니의 살뜰한 추천 도서 목록부터 마구 적어보자.
(오늘은 만화 위주)

-이종문화사에서 나온 위대한 여성들의 일러스트 전기 4종(니나 코스포드 그림)
1.버지니어 울프
2.프리다 칼로
3.제인 오스틴
4.코코샤넬

-우리 나비 출판사
1.7층(오사 게렌발)
2.엉클어진 기억 (사라 레빗)

-다카기 나오코의 그림책들
 (30점 짜리 엄마, 우리집 무크 못 보셨어요?)
-홍연식 작가의 책들
-끝없는 기다림(줄리아 워츠)
-백만억만 산타클로스
-게으른 새
-앙꼬 작가의 책들(삼십 살, 나쁜 친구) **** 땀이 훌륭한 작가라 칭송해 만지 않음
-어머니를 그리다(쥴리엣 케슬우드)
 유명 화가들이 그린 어머니 그림을 모은 책인데 아쉽게 절판이다.
 땀이 샤갈편의 한 대목을 읽어줬는데 넘 감동.
 중고라도 꼭 구해서 도서관에 모셔둬야지.
-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이다 작가의 책들
  지난주에 괴산 문화학교 숲에 강연 왔다는데 못 갔네.아쉬워라.
-준이 오빠(김금술)
-피터래빗(갈라파고스 출판사)
윌북출판사 책들
-스콧니어링, 헬렌니어링,정원일의 즐거움 (요런 책들은 두고두고 다시 읽어야지요.)
  솔멩이골도서관에도, 불났던 예전 우리집 서가에도 꽂혀 있던....

-건축관련 책들(르꼬르뷔제, 가우디, 프랭크로이드라이트, 루이스 칸... 이런 거장들 책도 있어야겠죠)

 



 







요즘하는 운동 소소한


주 5회 이상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두 번 정도 오전에 아이들 학교 보낸 뒤 화양동 계곡을 걷고
서너번은 저녁 먹고 나서 동네 산책 코스를 돌고 온다. 
정해진 건 없고 그날 기분에 따라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집을 나설 땐 조깅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걷다 뛰다를 반복.
작년까지는 4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린 적도 많았는데
올해는 몸이 안따라준다.

스쿼트 운동은 매일 200회씩.(오늘로 3일째)
양팔을 옆으로 쫙 뻗으며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내쉬면서 팔은 앞으로 나란히,
동시에 엉덩이는 뒤로 쭉 빼고 천천히 숨을 내쉰다.
오전에 100회, 오후에 100회씩 두 번에 걸쳐서 한다.
정선근 교수의 '백년 허리'란 책에서 허리 디스크 환자 한테 권하는 운동 중 하나다.
요 며칠 자전거 사고 후유증이 다시 나타나 목과 어깨가 몹시 아팠는데
스쿼트 100번 하고 났더니 그 증상이 사라졌다.
8분 정도만 투자해서 100회를 하고 나면
마치 동네 한바퀴 뛰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등이 후끈해지며 땀이 삐질 나고
허벅지와 종아리가 단단해지는 느낌!
얼마나 갈랑가 모르겠지만
일단 스쿼트 200회씩 꾸준히!!
허리와 목디스크 있는 분들께 강추.
 

딸에게 보내는 편지 바람의 아이들



너도 곧 어딘가를 향해 길을 떠나겠지.
가는 동안 길을 잃고 헤멜지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언젠간 꼭 닿을 수 있는 너만의 길이 있는 법이니까.
간혹 상처받는 일이 생긴다면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 보렴....
한줄기 지나가는 바람이,
재잘대는 새 한마리가 널 위로해 줄지도 모르니까.
만약 모든걸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오게된다면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려봐.
네 등이 따뜻해지던 기억을.
네가 사랑받았던 그 모든 순간을.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너의 알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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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여름,

나린이 5개월때 이곳에 올렸던 글과 그림이다.

원본이 없어져서 얼마전 다시 그리고

편지도 조금 수정.



쓰고 그리고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어 내는 일.


그건 나의 한 시절과 결별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또 다른 생의 빗장을 여는 일과도 같다.

책의 형태로 엮어 놓으면

이제 더 이상 어떤 미련도 후회도 없이

나로 부터 잘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올해는 여기에 썼던 육아일기를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어 봐야지.


출산 후 탯줄을 끊 듯, 이 작업을 마치고 나면

내 육아시절을 기억의 서랍장에 잘 넣어둘 수 있을 것 같다. 





병원 소소한

  

청주 터미널 부근에 있는 병원에 다녀왔다.

주차장을 세 바퀴 돌아 간신히 주차를 하고 6층 외과 입원실로 올라갔다.

종합병원 안에 들어서면

이 세상은 아픈 자와 아프지 않은 자의 세상.

이 단순 분류 시스템으로 모든 걸 바라보게 된다.

6인실 문 옆 병상에 B씨가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보호자 침상에 앉아 책 읽고 있는 경이 언니 뒷모습.

간밤에 서너 시간 동안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배를 움켜쥐며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퇴근한 의사들이 뛰어왔고,

내과 흉부외과 의사들이 우왕좌왕했단다.

경이 언니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다행히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경과를 지켜보는 중이란다.

갈비뼈 세 개가 부러졌고, 비장이 파열 됐다고 한다.

음주 졸음운전으로 집 앞 버드나무를 들이 박았단다.

목수들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차는 두 동강 나서 폐차장으로 갔고 B씨는 구급차 타고 이 병원으로 실려 왔다.

시골 아저씨들의 음주나 졸음운전 사고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졌다.

 

4년 전 정목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역시 목수들 회식 후에 동네에서 벌어진 사고였다.

오토바이 타고 오다가 화물차에 받쳐서 아스팔트에 머리를 쳐 박았다.

많은 뼈가 부러졌고, 8시간 넘게 수술을 했고,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

그때도 날이 무척 더웠다.

아이들은 어렸고 둘 다 잠들어 있던 시각.

그때 나의 의연한 태도에 다들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라고

후에 입방아를 쪘다나. (의연한 태도인지 냉정한 태도인지...)

생사를 오가는 환경에 닥쳤을 때

나도 모르는 힘이 불쑥 튀어나오는 걸 많이 경험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나무를 떠받치고 있는 단단한 뿌리처럼.

혼자 배낭여행을 하며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웠고,

1년 넘게 투병했던 동생을 지켜보다 먼저 떠나보내면서

환자 가족으로서의 병원생활백서를 익혔다.

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일하는 도중에도,

모처럼 즐겁게 회식을 한 후에도,

한번쯤 몸이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한다.

죽지 않는 게 다행이다.

D목수도 다리를 다쳐서 한 달 만에 복귀했는데,

같이 일하는 형님들이 연이어 사고를 당하니

팀을 책임지는 정목수 맘이 많이 힘든 것 같다.

 

같이 간 정목수랑 헤어지고

올 때는 경이언니차를 타고 왔다.

오는 동안 염려하는 이웃들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 혼자 있는 5학년 아들을 자기 집에 맡기라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언니는 집에 가기 전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블루베리 밭에 들렀다.

며칠 물을 주지 못해 언니 마음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수로의 물이 적어서 물을 틀어도 나오지 않았다.

이미 다른 논으로 다 빠져 나가서 맨 끝에 있는 언니네 밭까지 물이 도달하지 못했다.

헤어지기 전에 언니에게 간병생활백서 중 몇 가지를 들려주었다.

-언니, 요 옆에 있는 CGV 가서 영화 봐.

우리가 언제 이런데 와서 영화를 보겠어.

지금 기생충 상영하니까 그거 꼭 보고.

 

-언니 밤마다 맥주 마시니까 편의점에서 맥주랑 안주 사서 커튼 치고 먹어.

내가 편의점 상품권 카톡으로 보내 줄게.

 

-여기 근처에 쇼핑할 때 많으니까 아저씨 주무실 때 나와서 쇼핑도 해.

 

이 조언이 필요 없게 하루라도 빨리 퇴원하면 좋겠다.

 










나무 늘보 나 소소한


금요일엔 초등학교 가족캠프가 있어서 오전 10시에 나가 밤 9시 넘어 귀가.

다음날엔 춤 워크숍 참석하고 4시에 집으로 돌아와

바로 문전성시 장터에 나갔다가 9시에 귀가.

간만에 빡센 주말을 보냈다.

주로 방구석에서 느긋느긋 시간을 보내는 내겐 참 빡빡한 일정이었다.

라고 적고 보니 요즘 난 정말 나무늘보처럼 지내고 있구나.

~ 나무늘보!!!

만쉐!!

가족캠프랑 춤 워크숍이랑 벼룩시장 이야기를 길게 쓰고 싶은데

자고 싶다.

이제 의자에 오래 앉아있기도 힘들어.

특히 전국에서 모인 춤테라피 강사들과 함께한 그 짧고 강렬했던 시간.

맨발로 흙과 잔디를 밟고

바람을 느끼며

내 몸과 움직임에 몰입한 시간.

을 섬세하게 적고 싶은데

자고 싶다.

일기 쓰는 것도 체력이 필요해.

내일 써야지.

일간 이슬아는 정말 대단하단 말이지.

지금 이 시간도 자정 마감을 향해 달리고 있겠지?

난 돈 받는 것두 아니고 구독자도 없으니

낼 써도 되고 안 써도 되지.

중년의 여인에겐 잠이 보약이요,

내일을 위한 절대 비타민!

남은 맥주 탈탈 털어 마시고

잠이나 자야 긋다.




J에게 1 소소한

오월의 마지막 날,

봄기운을 빌어 저 우주로 메시지를 쏘아 올렸다.

그건 열여덟 나에게 보내는 편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난

늘 주눅 들어있고

소심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고 생각되지만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불과 몇 달 전에 내가 쓴 글에서 조차 낯선 이의 향기가 느껴지는데

십대의 난 너무 먼 과거의 인물.

그저 안쓰러운 한 소녀가 보일 뿐이다.

    

현재의 내가 과거속으로 들어가 어린 나를 들여다보는,

영화 같은 장면을 자주 상상하곤 한다.

그 속에 J가 있었다.

어느 날, J의 존재가 선명히 떠올랐다.

내가 J를 처음 봤을 때의 설렘과 떨림도...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고 그 조각을 얼기설기 끼워 맞춰본다.

섬광 같은 순간들이 불쑥 떠올랐다가 수면 아래로 꺼져버리기를 반복한다.

이 또한 불분명한 기억.

 

기억은 색깔이나 모양을 왜곡할 수 있어.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니까.“

단기 기억상실증환자의 기억에 관한 스릴러,

영화 메멘토에서 주인공 레너드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났다.

이제 막 노화의 문을 열기 시작한 중년의 내가

십대의 기억을 소환해서 해석하는 중이다.

현재, 그 중심에 J가 있는 거다.

 

J는 십년 간 한결같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J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그 표현에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늘 태연히 받기만 했었다.

이것이 나의 해석이다.

그때 J의 마음은 어땠을까?

J는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것이 이제야 궁금해진 거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너한테 받은 사랑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 것 같아.

너로 인해 내 등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어.

봄날 햇살이 내 등을 어루만져주듯이 말이야.

그걸 이제야 깨달았어.


하하.

이런 오글거리는 말을 전하기엔

우린 각자 너무 멀리 와버렸지.

그래도 꼭 전하고 싶었다.

고마웠다고.

이제야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속마음을 감추지 않으며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기억의 해석 놀이?

기억의 조각 맞추기 놀이?

만나서 이런 거 해보면 재밌겠는데

그러기엔 우린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지.

 

그리고 한 달이 흘렀다.


이번 오월이 가버리면,

기억의 무덤에 아주 묻혀 버릴까봐서

오월이 가기 전,

찬란한 봄 기운을 빌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오월의 마지막 날,

비밀의 숲에 들어가

메신저를 쏘아 올렸다.

 

마치 병 속에 든 편지를 태평양 한가운데에 띄워 보내는 심정으로…….





지오의 말들 2 바람의 아이들

지오는 8시만 되면 노트북을 열어 JTBC 뉴스를 틀어 놓는다.

뉴스가 끝나면 혼자 이런저런 걸 하며 한 시간 정도 뒤에 잠이 든다.

숙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책을 보거나 방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어제는 열 시가 넘었는데도 바닥에 누워만 있길 래 습관처럼 한마디 툭 던졌다.

그게 화근이 되어 아홉 살 딸과 마약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이야.

 

지오야, 이제 씻어.”

 

안 씻어. 내 몸이니까 내 맘대로 할 거야!!!”

 

말의 파동에서 결연함이 느껴졌다.

그 말은 나는 내 몸을 안 씻을 권리가 있어!’라는 선언처럼 들렸고,

나는 내 몸을 파괴할 권리다 있다라고 말한 프랑스와즈 사강을 떠올리게 했다.

내 식대로 해석한 지오의 말이 사강의 이 유명한 문장과 라임이 비슷했기 때문이리라.

문제는 내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는 거다.

 

프랑스 어쩌고 저쩌고. 그게 누군데?”

 

있어. 프랑스 천재 소설가. 마약을 갖고 있다가 공항에서 경찰에 체포 됐거든.

 그때 한 말이래”

 

마약이 뭔데?”

말을 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질문하는 지오다.

 

주사를 꽂아서 몸에 맞는 거야. 코로 들이마시기도 하고.

이거 맞으면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되거든.

영감도 잘 떠올라서 예술가들 중에 마약 하는 이들이 많기도 해.”

 

근데 마약을 하면 왜 잡아가?”

 

중독이 되거든. 하면 또 하고 싶고 또 하고 싶고.

근데 많이 하면 우리 몸에 아주 안 좋아서 죽을 수도 있어.

그래서 불법이야.”


불법이 뭔데?”

 

법을 어기는 거.”

 

그럼 마약은 어떻게 구해?”

 

씻으라는 잔소리가 마약 유통에 대한 얘기로 끝나리라 누가 예상했겠는가?

 

하늘을 나는 기분이 어떤 거지? 마약 해보고 싶다.”

 

지오가 작게 혼잣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이 말의 씨앗이 훗날 비극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씻으라는 잔소리도 그만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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