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쯤이야 바람의 아이들


요 몇 달 새 나린이는 여름 나무처럼 쑥 자랐다.

지난겨울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잠만 자더니(경이로울 정도로)

지난달엔 아무도 모르게 초경을 끝냈다.(엄마, 반성합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허둥대던 엄마가

사춘기와 성에 관한 책을 들이밀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딸은 모든 걸 거부하고 방문을 걸어 잠갔다.(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자기만의 공간에서 폭풍성장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내 곁에 다가왔다.

스스로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은 듯 편안해 보였다.

따님, 부족한 엄마가 한 수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고가는 말들 소소한





나도 당신도,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던,
별 것 아닌 하루하루.

그 속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건져 올린 순간을
기록하려 합니다.
나중에 이 책을 보며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걸
한번 확인해 보려고요.

아린 아이의 귀엽고 솔직한 그림일기처럼,
힘을 쫙~ 빼고 삐뚤빼뚤
제멋대로 즐겁게 만들어 볼 거예요.

어차피 우리만 보는
우리끼리 만드는 책이니까요.


이 수업은 충북문화재단의 지역특성화 사업으로 진행됩니다.





너였구나, 그 북디자이너가 소소한

 

북튜버 김겨울의 방송을 보다가 잊고 있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출판편집자와 작가가 본 출판 로코드라마란 부제를 달고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팩트 체크하는 내용이었다.

겨루출판사 사장(김태우)이 북디자이너 지서준을 당장 잡아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김겨울)    실제 저런가요?

편집자K)  잡아오라거나 저렇지는 않은데

             저 캐릭터를 자문해준 이**이라는 디자이너가 있어요,

             실제 그분이 최근에 인기 많은 디자이너세요.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거의 모든 책과

민음사 문학시리즈인 쏜살문고를  디자인한,

북 디자인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 디자이너가

내가 아는 그 이**?


섬광 같은 확신과 함께 지난 시간을 순식간에 거슬러 올라가

또렷이 기억나는 한 얼굴과 조우했다.

인터넷에 이름을 입력하니 포스트가 좌르르 뜬다.

코끝이 약간 밑으로 쳐진 긴 콧대,

야무지게 다문 입술과 동그란 안경.

까까머리만 약간 긴 곱슬머리로 바뀌었고,

얼굴에 시간이 스친 흔적만 조금 있을 뿐.

천진함과 호기심 가득한 두 눈은 그때,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느린 말투에 낮은 목소리,

독특한 상상과 예사롭지 않은 드로잉 실력으로

선배들을 주눅 들게 했지만

겸손하고 배려심 많던,

바로 그 아이였다.

고등학교는 달랐지만 우린 같은 미술학원을 다녔다.

안양 시내 중심가에 있던 신생입시미술학원이었는데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학생들끼리 허물없이 지냈다.


드라마 속 지서준이 글도 쓰는 디자이너로 나온 것처럼

그도 산문집을 출판했고 칼럼을 연재하며

언젠가 발표할 소설을 틈틈이 쓴다고 했다.

남들이 뭐라 해도 멋진 디자인 보다는 자신이 택한 낯선 디자인을 시도하는,

책을 포함해 음반, 포스터, 로고 등 다양한 그래픽 작업을 하는 핫한 디자이너.

본인이 디자인한 책, (우리는 작게 존재합니다)로 인연을 맺어

인도 타라북스 레지던스에 머물 예정이라는 게 최근에 소개된 마지막 근황이었다.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를 비롯해 여러 곳에 소개된 인터뷰 글을 읽으며

설레고 흐뭇해했다가 조금은 씁쓸해졌다.


미대입시라는 공통의 목표로 잠시 스쳤던 인연일 뿐인데,

뭐지? 이 감정은?

잠시나마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던 그 아이(중년의 아저씨)가 멋지고,

지금까지 만들어낸 책이 좋고, 언젠가 발표할 소설도 기대된다.

남들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자신감과 실력이 질투 나고

새로운 시도를 위해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가 마냥 부러웠다.

(어쨌든, 난 지금 감정의 교란 상태)

 

그의 작업과 생각과 행보를 읽는 동안

난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되어 봄꽃 같던 시절의 나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지나 온 시간의 결들을 되짚어본다.

매순간 내 선택을 따라 당도한 곳이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겠지.

우린 각자 자기만의 시간을 충실히 살아온 거겠지.

타라북스에서 얻은 영감으로 그 아인 또 얼마나 매력적인 작업을 이어갈까?

그가 만든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앞으로 나오게 될 책들을 기대한다.


근데 넌 이 누나를 기억할까? ㅋㅋ







바른자세, 바른 운동 꾸준히~ 소소한


당장은 아니어도 시간이 지나면 나타난다는,

너무나 흔하게 들어왔던 말,

교통사고 후**증이

내게도 찾아왔다.

자전거 타다 혼자 붕 떠서 땅에 얼굴을 쳐박은 거지만...

목과 어깨 통증으로 뒤늦게 물리치료와 지압 치료,

반신욕까지 한꺼번에 하고 온 어느 날,

내가 미쳤지,

삼종 치료에 혼자 만족한 나머지

오후에 쪽파김치 담근다고 수선 떨고 났더니

잊고 있던 허리디스크까지 재발하고 말았다.

이 증상이 처음 나타난 게 스물여덟 살 때인 걸로 기억한다.

광고디자인 회사를 다닐 때였다.

퇴근 무렵 의자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허리가 두 동강 나는 느낌이 들었다.

어 이 감각은 뭐지?

그러곤 거짓말처럼 딱딱하게 굳은 허리가 다음날까지 펴지지 않았다.

그다음 날 허리는 원상복구 되었고,

그날의 기억은 몇 년간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

다시 재발한 건 첫째 아이를 출산한 뒤였다.

그 후로 1년에 한두 번 잊을만하면 이 증상이 나타났다.

몇 년 뒤에나 병원에 가서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걷기나 수영을 권한다는 의사의 충고를 들었다.

이 허리디스크라는 증상이 간과하기 쉬운 게

평상시에는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1년에 한두 번 불시에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허리가 잘리는 통증과 함께 말이다.

며칠 누워 지내다(나이가 들수록 그 기간도 길어진다.) 통증이 사라지면

내가 디스크 환자라는 기억도 사라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몸은 다시 본래 습관대로 편한 자세, 곧 나쁜 자세에 익숙해지고

운동도 소홀해진다.

이번엔 목과 어깨, 허리까지 풀세트 통증으로

한방치료 받으면서 나흘째 누워 지내는 중이다.

내 몸에 목과 어깨와 허리가 있다는 감각을

이렇게 확실히 느껴본 적이 있었나 싶다.


뭐 힘든 일 하세요?”

-아니요

 

집안일 조금만 해도 금방 지치지 않나요?

-뭐 그 정도는 아닌데요.


소화는 잘 되세요?”

-네 소화력은 짱이예요.


위가 안 좋으신데

-저 위가 안 좋다고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는데요.

 

가슴이 답답하지 않나요?”

-아니요

 

몸이 상당히 약한데 다 아니라시네.”

 

벗겨진 앞 이마를 희끗한 머리칼로 살짝 가린 한의사 샘이 

내 맥을 짚으며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생각해보니 육아할 땐 늘 그랬다.

다크 서클이 코끝까지 내려왔고 피골이 상접했고, 밥해 먹을 기력도 없었다.

좀 살만해진 게 몇 년 안 됐다.


흑흑흑~~

한꺼번에 찾아온 노화 증상을 받아들이기에도 버거운데

사고 후유증에 허리 디스크까지...


웅크리고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본다.

겨울인지 봄인지 알 수 없는 날들이다.

남쪽엔 꽃이 만발한데 이 동네는 여전히 잿빛이다.

꽃 필 때 쯤엔 접힌 내 허리도 다시 펴지겠지.

그땐 허리디스크 환자로서

평생 지녀야 할 바른 자세와 바른 운동을

온 몸과 마음에 새기고

최선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하자꾸나.




 




읍내 쇼핑 바람의 아이들


어쩌다 한 번 문방구 가서 사고 싶은 것 고르는 게 아이들에겐 최고의 호사다.
오랜만에 아이들 데리고 읍내에 나갔다.
코 끝은 시리지만 미세먼지 없는 청량한 날씨.

"엄마, 알파 문구로 가야 해."

읍내에 문구점이 네 군데 있는데 지오가 꼭 알파로 가자고 한다. 
그곳에선 책과 문구를 같이 판다.
알파 문구에 도착해 셋이 각자 쇼핑의 시간을 갖는다.
나는 다음 주 수요일, 대전의 작은 도서관에서 드로잉 수업에 쓸 재료를 샀고
나린이는 샤프심이랑 수정테이프, 아이클레이를 골랐다. 
마지막으로 계산대에 나타난 지오는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 2' 책 한 권과 작은 지갑을  내밀었다.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던 이 책 1권을 며칠 열심히 보더니
이곳에서 용케 2권을 찾아냈다.
이슬아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에 실린 만화도 
요즘 지오가 재밌게 보는 책.

"엄마, 이거 은유 작가의 책 제목이랑 비슷해.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그치?"

"오 그 운율을 알아차리다니 대단한 걸"

문방구를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이들이 고르는 메뉴는 분식 아니면 순대국밥이다.
간만에 하는 외식이라 뭔가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도
시골 읍내에 딱히 그런 식당도 없거니와
두 딸의 선택도 언제나 소박하다.
매운 닭발 볶음과 순대국밥을 특히 좋아한다.
아홉 살, 열 한 살 짜리 여자애가 개걸스럽게 먹을 만한 음식은
결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자매는 그렇게 먹는다.
제 아빠가 좋아하는 메뉴들이다.     

분식집에서 라면이랑 김밥, 떡볶이를 먹고
길 건너 베스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미용실에 들러 내 머리를 조금 다듬고 읍내 쇼핑 마무리.

읍내에서 동네 사람들 여럿 만났다.
파리바게트 앞에서는 고등학생인 상현이 태현이 형제를,
베스킨라빈스에선 피아노 선생 딸 6학년 주아를,
박조영헤어클랍에서는 태임이네랑 딸기네 식구들과 마주쳤다.
동네에서도 자주 보지만
여기서 보니 더 반갑네.
동네도 작고 읍내도 작다.
이곳에서 11년, 
참 오래 살고 있구나.
    

 
 

 
 



퇴행에 임하는 자세 소소한


목보호대를 다시 찼다.

싸이클 타다 넘어진 사고가 난지 40일이나 지났는데 목과 어깨 통증은 여전하다.

사고가 난 직후 읍내 종합병원에 입원해 X-rayCT를 찍었다.

담당 신경외과 의사는 뼈에 이상이 없으니 퇴원해도 된다 했는데

생각해보니 퇴원 후 어떻게 조치하라는 조언도 없었고,

나또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려니 했던 거다.


신경이 굳어지기 전에 지압으로 풀어주고 운동을 해줘야 한대서 헬스장에 다녔다.

헬스장 관장의 조언대로 지압 마사지 받고 운동을 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미루고 미루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운동금지령이 내려졌다.

엑스레이 사진을 본 의사가 내가 일자목인데 거기에 갑작스런 외상이 가해져 통증이 심해진거랜다.

C자형목이 정상인데 바르지 못한 자세나 스트레스로 인해 퇴행성 증상으로 일자형목이 된다나.

어깨 근육이 늘 딱딱하게 뭉쳐있고 뒷목이 뻐근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교정운동과 치료법, 의료 용품과 치료 병원 광고까지

일자목 교정에 관한 정보가 좌르르 뜬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는 언제나 도처에 널려있다.

내게 필요한 순간이 찾아와 접속해 보면 그곳엔 이미 그 세계가 존재했었느니라.

-귀하의 몸은 노화로 인한 퇴행이 진행 중이오니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네비게이션 안내음성과도 같은 경고음이 들려왔다.


-어머니, 운동하면 안 돼요. 이거 오래 갈 것 같은데요.

내가 간 곳은 괴산 읍에서 가장 큰 정형외과다.

몇 년 전 갔을 때 봤던 후덕한 인상의 중년 아저씨를 상상하며 원장실 문을 열었더니

대단히 핸섬한 젊은 의사가 앉아 있어 순간 멈칫했다.

~겁나 잘 생겼다!’

날렵한 턱선에 느끼하지 않은 적당한 두께의 쌍꺼풀과 매끈한 콧대.

로맨스 드라마 주연으로 캐스팅해도 될 만한 외모다.

괴산에서 11년간 만났던 남자 중에 최고로 잘생겼다. 내 기준으로~

시골 젊은 의사가 지닐법한 거만함도 보이지 않았다.

근데 나더러 어머니라니...

저 밖에 앉아계신 할머니들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 같아 순간 서글퍼졌다.

몇 년 전 이 병원을 찾았을 땐 왼쪽 팔에 이상이 있어서였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엄마들 계주 경기를 하다 넘어져 왼쪽 팔을 다쳤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튼실한 허벅지를 가진 언니랑 달리다가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자빠지며 왼팔을 접질렀다.

조금만 더 달리면 앞설 것 같은데 간격을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출산 후 운동을 안 하던 상태에서 마음만 앞섰다.

달리기에 자신 있었던 젊은 날 몸이 여전한 줄 알았지.

결국 한 발 차이로 결승 테이프를 코앞에 두고

초등 전교생과 선생님들과 동네 사람들 앞에서

온몸을 슬라이딩하며 나뒹구는 쌩쇼를 선보였다.

 

-신경이 굳어질 수 있으니 적당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설?도 있는데...

-이 분야는 제가 전문가예요.

통증이 나아질 때까지 운동하면 안 됩니다. 근데 무슨 운동을 하시는데요?

-달리기나 걷기 같은.... (깨개)

-어머니 선택이겠지만 저는 통증이 나아질 때까지 물리치료 받으라고 조언드립니다.

 

, 스앵님!

그날 아침도 헬스장 런닝 머신 위에서 열나 뛰며 흡족해했었다.

 

책 볼 때 눈앞이 흐릿해서 얼마 전엔 안경을 맞췄다.

책 볼 땐 또렷한데 고개를 들면 흐릿하다. 안경 하나를 더 맞춰야하나?

지난해부턴 한결 같던 생리주기도 불규칙해졌다.

생리 때마다 샘물 흐르듯 콸콸 쏟아지는 혈 때문에 적잖이 스트레스였는데

이제 검은 찌꺼기 같은 건더기만 조금 나오다 끝난다.

그것도 몇 개월에 한번씩.

조만간 부인과 진료도 받으러 가야겠다.


~

이제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내 몸의 퇴행 증상을 잘 살펴야겠구나.

감동의 후기가 올라오는 눈이 부시게를 시청하며

나를 살뜰히 살피는 시간을 가져보자.

등장 인물들의 디테일한 감정선을

감당할 자신이 있을라나 모르겠다.  

목보호대를 끼고 4회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밥과 노동 소소한


한살림 매장에서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반찬 만들기 수업을 들었다.

요리클라스 같은 거 난생 처음 참여해 봤다.

샐러드와 소스, 봄나물 무침을 한다기에 입에 침이 가득 고여

스마트폰 밴드로 바로 신청했다.

연근과 도라지를 샐러드로 먹다니...

양상추나 기타 등등 푸성귀를 손으로 찢은 다음

시중에서 파는 소스를 뿌리는 게 전부였던 내겐 상상도 못해 본 레시피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친 연근을 찬 물에 헹구는 강사님 손이 자꾸 신경에 거슬렸다.

양 손에 칭칭 감은 팔찌랑 커다란 반지가 연근과 함께 물속에서 찰랑거렸다.

음식에 불순물이 섞인 것만 같았다.

집에서도 이렇게 주렁주렁 달고 조리하세요? 라고 묻고 싶었다.

유자청과 레몬청, 소금, 식초를 섞어 만든 소스에

얇게 저민 연근과 사과를 넣고 버무리면 끝!

아삭아삭, 새콤달콤, 나른한 몸을 상큼하게 깨우는 맛에 참기로 했다.

두 번째 샐러드는 쌀뜨물에 담갔던 생도라지와 채 썬 대추.

여기에 같은 소스를 넣어준다.

쌉쌀한 도라지와 달큰한 대추의 조합은 나름 괜찮았다.

 

요리클라스를 신청한 건 정목수 때문이다.

동네 아줌마들과 얘기하다보면 남편보다 아이들 때문에 밥 차리는 게 번거롭다고들 하는데

난 그 반대다. 내게 주어진 가장 막중한 임무는 정목수 아침과 저녁을 챙기는 것.

이렇게 말하고 보니 대단한 밥상을 차리는 것처럼 들리는데 아마 심리적 부담 때문인 것 같다.

11년째 그 부담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 한계를 초과하는 과한 육체노동자에게

한 끼 식사는 그냥 대충 건너 뛸 수 없는 것이기에.

막노동하는 목수 아내의 업보라 여긴다.

 

아침 620분이면 밥상이 뚝딱 차려져 있어야 한다.

저녁 6시 반쯤, 멀리서 덜컹덜컹 트럭 소리가 들리면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낀다.

어서 저녁밥상을 차려야 해.

국이나 찌개는 준비됐는지, 반찬은 골고루 있는지 식단을 점검한다.

나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 같아.

 

계속~


엄마, 나 책 만들고 싶어. 바람의 아이들



- 엄마, 책은 몇 살 때 부터 낼 수 있어?
-엄마, 나 책 낼 수 있어?
_ 엄마, 책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들어?

다섯 살때부터 노랫말 짓고 동화를 쓰기도 했던 지오가 물었다.


스케치북을 접어서 작은 책을 만들었다.
'글 그림 정지오' 도 빼놓지 않고 꼭 적는다.

네가 파리의 일상을 아느뇨?



했더니,'한가로운 시골의 아침'이란 표지를 그렸다. 

-엄마, 나 그림 더 잘 그리고 싶은데 안 돼.

-넌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청소하다 발견한 지오의 일기를 읽는다.




책을 만든다는 건?

지오가 자신에게 하는 질문을 내게도 던져본다.

올해도 솔멩이골 주민 책만들기 수업을 이어간다.
N이랑 S랑 인쇄와 출판에 대해 공부하며
무크지도 만들어보자 했다.

창작열은 만큼은 잡초처럼 질기고 무성하나
마감없는 작업을 지속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애 딸린,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아무도 의뢰하지 않는 결과물을 완성하기란 여간 녹록지 않다.
제작비는 지원사업비로 충당하고
서로에게 조언과 자극을 주며 이것저것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냥 마음이 동할 때 무엇이든 쓰고 그리는 행위로 위안을 받던 때가 있었다.
딱 그만큼만이면 좋은데 자꾸 욕심이 생긴다.
해도 괴롭고 안 해도 괴롭기는 마찬가지.

자족할 만큼 딱 그만큼이 어렵다.









화양계곡 그림일기


내가 혹시라도 이 마을을 떠나게 될 때
가장 아쉬운거 한가지만 꼽으라면
난 주저없이 이 길을 말할거야. 

사계절 언제나 딴 세상이 펼쳐지는 길.
미세먼지 가득한 날도
거짓말처럼 푸른하늘이 열리는 길.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해주는 길.
내 최애 산책로 화양계곡.









낡고 웃긴 헬스 클럽 소소한


지난주부터 읍내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주변이 온통 산책로인데 일부러 차를 타고 나가서 러닝머신 위를 걷는다고?

마당에 나가면 할 일이 널렸는데 실내에서 아령이나 붙잡고 근육을 만든다고?

코웃음 치던 나였다.


언니, 내가 관장님한테 언니 자전거 사고 난 거 얘기했더니,

그거 얼른 마사지 해서 풀어줘야 한대.

그분 지압 마사지 정말 잘하셔. 언니 꼭 데리고 나오래.”


이번 달부터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한 S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사고 나고 한 달 동안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낫겠거니 생각했다.

얼굴 붓기와 멍은 하루가 다르게 나아졌지만 목덜미와 어깨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헬스장 회원들에게 서비스로 해준다는 말에 한 번 따라가 보았다.

 

동양헬스클럽이라는 기다란 나무 명패가 달린 건물은 몹시 낡고 허름했다.

자동차로 오가며 몇 번 본 적 있는 곳이었다.

오래전 폐쇄되어 방치된 건물인 줄만 알았는데

30년째 헬스장으로 운영 중이란다.

건물은 일본 강점기 때 지어졌다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콧속을 파고드는 구릿한 냄새에 멈칫했다.

서너 명의 아저씨들이 오래된 왕조의 유물 같은 기구들로 근육을 단련하고 있었다.

저 러닝머신은? 저 역기는? 저 아령은 대체 얼마 동안 몇 명의 손길을 탔을까?

닳고 닳아 당장 걷어버리고 싶은 바닥 매트와 꼬질꼬질한 요가 매트.

곳곳에 배인 아저씨들의 시큼한 땀 냄새. 문 틈새로 들어오는 미세한 담배 냄새.

30년 전 관장님이 보디빌더 대회에서 받았다는 트로피와 과장된 포즈의 신체 사진...

눈길 닿는 곳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 공간을 둘러싼 모든 것에 내 몸이 오염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오전에 운동하는 분들은 대체로 읍내 자영업자분들.

**족발, **파자 집 사장님, **미용실 원장님.

시설이 이 지경인데도 월 회원이 80명이 넘는단다.(읍내 유일한 헬스장이므로)

자그마한 체격의 수더분한 관장님이 기구 순서대로 근육 단련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우리 동네에서 함께 차를 타고 나간 네 명의 여자가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며 차례대로 운동을 한다.

관장님 구령에 따라 운동하는 동생들 모습에 자꾸 웃음이 나왔다.

70년대 변두리 헬스장에서 코믹 영화 한 편 찍는 기분이다.


S의 말대로 관장님의 지압마사지는 절로 엄지 척 하게 만들 만큼 신묘했다.

45도 정도만 돌아가던 목이 100도 정도까지 돌아가는 기적이 일어났다.

40년간 지압마사지를 하셨다니 일단 믿어보기로.

통증이 완화될 때까지 마사지 받으러 일단 한 달만 다녀보기로 했다.

당분간 오전 시간은 우리 동네 수다왕 동생들과 운동하며 보내기로.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