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는 소소한


수요일은 아침에 집을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일주일 중 유일하게 바쁜 하루다.
아이들 밥 먹여 학교 보내고 삼십 분 동안 휘리릭 집 안 청소하고 9시쯤 집을 나선다.
읍내에 있는 중원대 수영장으로 수영 강습받으러 가는 날.
오늘은 윗마을 사는 현주도 함께 갔다.
여름에 계곡에서 아이들 데리고 놀 때마다
다이빙과 함께 개헤엄, 자유형, 평형, 잠영을 넘나드는 그녀의 수영 실력을
늘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이웃 마을 선주, 아르미랑 초급 강습받는 동안 현주는 혼자 자유 수영.
선주는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초급 강습만 네 번째란다.
수영이 처음인 막내 아르미는 산에 가면 멧돼지처럼 이곳저곳 마구 뛰어다니면서
물속에서는 가장 힘겨워한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한겨울에도 맨발로 다니는 기운 충만한 여자다.
한 달 뒤엔 아마 우리 중 아르미가 수영을 가장 잘하게 될 거라고 선주랑 나랑 의견 일치를 보았다.     
빗으로 머리 안 빗은 지 십 년 넘었다나?
긴 머리카락은 늘 손가락으로 사사 삭 대충 쓸어 넘긴다.
저런 떡진 머리는 첨 본다.
멀리서 보면 꼭 레게 머리를 한 밥 말리 같다.

수영을 끝내고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중원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것은 절로 환호성이 나오는 신세계였다.
첩첩산중 시골 육아 생활을 끝내고,
수영하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때를 밀고
가뿐해진 몸과 뽀얘진 얼굴로 
허공에서 너울대는 치즈를 바라보며
갓 구워낸 따끈한 피자를 먹는 그 맛이란.
다음엔 오뎅, 떡볶이, 순대를
그다음엔 탕수육, 짜장면, 짬뽕 세트를
그다음엔 사발면에 김밥을
그다음 다음엔 칼국수와 떡만둣국을...
점심을 먹은 후에는 한살림 매장으로 장을 보러 가는데
"어 자기 이거 샀어? 나도 사야지.
 이거 해 먹어봐. 맛있어.
 그래? 어 나도 사야지"
뭐 이런 식으로 함께 장을 보다 보니 지출이 배로 느는 거다.
그렇게 삼 주를 보내고 나니
계속 이러다간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다는 생각에
오늘부터 도시락을 싸 오기로 했다.
그 시각, 등이 활처럼 휘도록 쐐빠지게 일하는 정목수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한살림 매장 2층에 있는 모임방에서 점심을 먹었다.
김장 얘기가 나왔다.
나만 빼고 다들 김장 완료.
배추를 뽑아왔는데 일주일간 둬도 괜찮을지 물었더니
모두 절레절레.
절임배추로 하면 혼자 하겠는데 배추도 절여야 한댔더니
뭐 그까이꺼 그냥 절여서 혼자 후딱 하면 되지 뭘 남편이랑 같이 하냐고들 한다.
'그래 니들은 끝났다 이거지?'
작년에는 절임배추 사서 혼자 가뿐하게 끝냈었다.
배추를 절여본 적이 없어서 절임배추 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정목수랑 함께 할 생각이었다.
김장 배추는 배추를 물에 푹 잠기게 해서 잘 절이는 게 제일 중요하다.
현주가 배추 절이고 남은 소금물이 있다고 해서 계획을 급히 변경했다.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염도계로 농도까지 맞춰 놓은 소금물이란다.
마침 오늘이 장날이라 장에 가서 쪽파랑 갓이랑 마늘을 사고
금요일에 현주네 소금물에 배추를 절이고 토요일에 혼자 하는 걸로 결정.
어쨌든 소금물도 해결됐다.
새우젓은 태임이가 시어머니가 직접 담근 거라며 조금 나눠주었다.
무도 내가 필요한 양의 절반은 협찬해 주기로 했다.
(내가 만든 다래잼이랑 토마토 퓨레를 줬더니-많아서 그냥 준 거였는데 새우젓으로 답례를) 
이번 김장도 두루두루 도움을 받는다.
이렇게 먹고 산다.  
내년에는 꼭 김장채소를 직접 키우리라. 

함께 장을 보고 이웃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에서 두시 반까지 시간을 보내고
인근 초등학교에서 두 시간 방과 후 미술수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다섯시 십오분 정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학교에서 먼저 돌아온 자매가  
컴퓨터 앞에 앉아 만화를 보고 있다.
서둘러 구들방에 불 때고
거실 난로에 불 지피고
저녁밥을 짓는다.
저녁 먹고 설거지 하고 나서 8시 땡하면 뉴스룸 온에어를 켠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요즘 정목수가 야근을 해서 9시가 되면 또 저녁상을 차린다.
9시 반이면 아이들을 재운다.
오늘은 드라마도 한 편 보는날.
수영을 하다보니 푸르바다의 전설을 챙겨보게 된다.
나 오늘 수다가 좀 길다.
할 일이 남았지만 내일을 위해 이제 자야겠다.

 


 






 


 
 
      

배추 소소한


아직 김장을 못했다.
동네에서 절임배추를 사서 할 생각이었는데
다들 배추가 모자라 미리 주문 받은 것도 취소해야 할 판이란다.
진즉에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다행히 선교언니가 밭에 남은 배추를 가져가도 된다고 해서
어제 언니네 밭에 가서 서른 포기 넘게 베어 왔다.
맛나다고 소문난 언니네 유기농 배추.
언니는 한사코 돈 안 받겠다고, 맛있게 먹으면 됐다고 말했지만
그럴 순 없지.
한 포기 알찬 배추로 자라기까지의 그 수고를 알기에
이제 예전처럼 넙죽넙죽 맘 편히 받지 못한다.
가만있자 내가 줄 수 있는게 뭐 있더라? 
얼마 전에 만든 다래잼이랑 블루베리 잎으로 만든 차랑, 개복숭아 효소가 있다.
그래도 뭔가 만들어 놓은게 있어서 다행이다.
사실 다래는 아랫집 희진 언니한테 받은거다.
오지랖 넓은 희진 언니가
이웃마을에 사는 분의 농산물 판매를 도와준 답례로 다래를 한 박스 받았는데
그걸 어찌할 시간이 없어서 며칠 묵히고 있다가 나한테 넘어온 거다.
블루베리 잎은 차로 만들어 마시면 좋다고 해서 미경언니네 밭에서 언니랑 함께 딴 것.
따지고보니 이 가공품의 원재료도 실은 남의 노고로 얻은 수확물이다.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돌고 돌아 연결되고 연결되어 이렇게 먹고 살아간다.
오늘은 차에서 배추를 꺼내 새끼 손가락만한 벌레를 털어내고 집 안에 들여놨다.
김장은 정목수 일이 다 끝난 일주일 뒤에 함께 하기로 했다.
배추를 직접 절여서 하는 건 이번이 처음.
그때까지 배추 상태가 괜찮아야 할 텐데.
춥지 말아야 할 텐데......



      

산책, 수영 소소한


하루 쉰 나린이가 오늘은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이도 닦고 학교 갈 준비를 마쳤다.
나도 오랜만에 학교 버스 타는 곳까지 나와 아이들을 배웅했다.
그리고 나 홀로 아침 산책.
늘 가던 재떨기 마을의 강둑길을 걸었다.
지난주 절정이던 단풍색이 다 바래졌다.
색이 바래고 바싹 마른 채 나무에 매달려 있는 잎들.
바닥에도 바삭한 잎들이 나뒹군다.
적요하고 쓸쓸한 가을 길. 가을 풍경.
들깨, 나락에 이어 배추 수확이 한창인 밭.
올해 나의 수확물은 손가락만 한 당근들뿐이다.
날마다 아이들과 맛있게 씹어먹는다.
이제 한해 살림의 마무리, 김장을 해야 한다.

지난주부터 중원대로 일주일에 두 번 수영을 배우러 다닌다.
20년 전, 한 달간 초급반 강습을 받은 이후 처음이다. 
물 공포증이 심해서 그때는 물에 뜨는 것조차 오래 걸렸었다.
얼마 가지 않아 금방 지쳐버리는 게
체력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호흡 때문임을 이번에 알았다.  
지난주 일요일에는 수영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초급반 레인에 우리밖에 없었다.
모든 레인이 비어 있고 맨 끝 레인에서만 학생들이 강습을 받고 있었다.
여름마다 계곡에서 놀던 나린이는 혼자 물속에서 잘 논다.
내가 호흡법을 가르쳐 주겠다는데 영 말을 듣지 않고 제 방식대로 한다.
저러다 스스로 알게 되겠지.
아이들은 엄마 말을 안 듣는다.
다음번엔 수영 잘하는 아란이 엄마랑 같이 와야겠다.
아줌마 말은 듣겠지.

아무도 없는 물속에 잠수해서 수영했다.
시야를 가리는 사람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온통 물이다.
이런 경험 난생처음이야.
물고기가 된 것 같아.
진짜 바다에서 이렇게 수영하면 얼마나 멋질까?
일요일마다 아이들 데리고 와야겠다.
당분간 열심히 수영을 배워야겠다.











  

나린이의 월요병 소소한


월요일 오전. 지금 나린이랑 같이 있다.
지난주 월요일에 이어 이번 주에도 학교 땡땡이친 나린이.
어서 일어나라는 내 잔소리에 양쪽 귀를 틀어막고 이불에서  나오지 않는다.
지오는 일어나서 혼자 옷 골라 입고 밥을 먹는다.
나린이 기다리느라 학교 버스 또 놓쳤다.
오늘 나린이 학교 보내는 건 포기다.
'내 일학년 때만 봐주겠어. 앞으론 국물도 없다'
이불 속에 있는 나린이에게 지오 학교 데려다주고 올 동안
지난번 처럼 집 안 청소해 놓으라 당부하고 학교로 갔다.
지오를 유치원에 들여 보내고 나린이 담임 선생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과 내가 합의해서 내린 진단은 이렇다.
나린이가 뭐든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엄청 큰 데
금방 지치고 마음만큼 잘 안되니까 힘들어 한다는 것.
월요일은 그림일기 검사받는 날인데 생각해보니 지난 주말에 일기를 안 썼다.
아마 숙제를 안 해서 월요일마다 오기 싫어하는 것 같다고.
엄마가 계속 봐주면 버릇 된다고 잘 타일러 달라는 선생님의 당부.
'그래. 일학년 때만 봐준다. 담엔 엄하게 해야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하지만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찌될지 잘 모르겠다.
그 경계에서 아도 늘 갈등한다.















솔멩이골작은도서관 소소한


도시에서 내려와 첫 아이를 출산한 초보 엄마 셋.

그해 그녀들이 절실히 원한 공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마을도서관이었다.

장소를 제공하고 후원금을 내주신 분들 덕분에 세 엄마는 도서관 만들기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기 젖 먹이고, 기저귀 갈아가며 사야 할 그림책 목록을 뽑고, 책 주문하고,

기증받은 책들과 함께 책 분류하고 라벨 붙이는 작업을 했다.

그사이 더 많은 엄마의 손길이 보태져 미약하나마 얼추 도서관 모습이 갖춰졌고

20105월 마지막 날, 동네 어르신들까지 모시고 개관기념잔치를 치렀다.


개관 준비를 하며 보낸 하루하루는 참 설레는 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펼쳐질 재미난 일들에 대한 상상으로 밤마다 히죽히죽 웃으며 잠을 설쳤다.

우리는 동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그림책 읽기 모임도 했으며,

어린이날에는 인형극 공연도 보여주었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가들은 도서관을 놀이터 삼아 책과 함께 놀았다.

하지만 아가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 동네에 방과 후 공부방이 생기면서

도서관을 향한 발길은 뜸해지기 시작했다.

농사일로 바쁜 엄마들은 미안한 마음으로 도서관 운영에서 손을 뗐고,

도서관 이전 문제와 운영방식을 둘러싼 다툼으로 사람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도 했다.

그 와중에 사서를 꿈꾸는 한 엄마의 노력으로 지원금을 받아 인문학 강의도 열고 새 책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을도서관은 개인의 열정으로만 운영될 수 없는 일.

마을 사람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던 탓에 힘에 부친 그녀는 자진해서 맡았던 관장을 그만두고

사서 공부를 위해 올 초에 도시로 떠났다.

 

다시 도서관은 엄마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항상 문은 열려있었고 마을주민 누구나 꾸준히 드나들었으며

누군가는 조용히 책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도서관이 생기고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사 온 젊은 엄마와 아이들도 많아졌다.

그들 중 도서관을 사랑하는 또 다른 젊은 엄마가 팔을 걷어부쳤다.

고등학교 교사를 휴직중인 두 아이의 엄마.

그녀 덕분에 우리는 오랜만에 도서관에 모여 대청소를 했다.

이웃마을 숲속작은책방에서 알려준 도서관 희망 원정대에 관한 정보가 계기가 되었다.

도서관 희망 원정대는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지역도서관을 찾아와

도서 분류와 목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서, 이용자 교육을 해주는 봉사 활동이다.

학생들과 연락이 닿았고, 이번 겨울에 우리 마을도서관에 오기로 약속을 했다고,

그래서 함께 모여 청소를 하자고 그녀가 제안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모여 묵은 먼지를 말끔히 털어냈다. 과감하게 책장 배치를 다시 했고

, 천장, 책장에 싸인 먼지, 새까맣게 싸인 선풍기 먼지도 모두 없앴다.

돌이켜보니 지난 6년간  묵은 책 버리고 책장 옮기고  도서관에 관한 회의하고....

이걸 참 여러 번 반복했던 것 같다.

이런 내공이 쌓여서인지 이제 모두 알아서 척척이다.

시간 나는 사람, 좀 더 열정이 있는 사람이 조금만 손길을 보태면 된다는 사실도 모두 안다.

도서관은 저절로 커가는 한 그루 나무.

꾸준히 우리의 관심과 애정을 밑거름 삼아 든든한 나무처럼 알아서 자란다는 사실도..... 

 

 다음 주에는 화사한 색으로 예쁘게 벽을 칠해야지.

 지저분한 철문에는 시트지를 붙여야겠어. 

 아이들과 도서관 간판도 새로 만들고, 책반납함도 만들어야지.

 '내가 읽은 책소개' 이런 프로그램도 해봐야겠어.

 책속의 한문장을 적거나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나 아무 이야기나 적어서 추천해 주는거지. 

 다시 재미난 상상으로 맘이 설렌다.

  

 

  



디어 마이 프렌즈 소소한


 내 이름은 유담.

 나는 다섯 살이다. 위로 언니와 오빠가 있다.

 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다.

 대신 엄마 따라 동네 이모들과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카페에도 가고 목욕탕에도 간다.

 이모들은 모이기만 하면 새가 노래하듯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이모들은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사주고 맛있는 거 있으면 서로 나눠 먹는다.

 이모들은 나더러 담이 아줌마라고 부른다. 내가 말하는 게 아줌마 같다나.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엄마랑 동네 이모들이랑 아주 큰 버스를 타고 바닷가에 갔다.

 더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다른 초등학교를 보러 가는 거라고 엄마가 말해 주었다.

 버스 안에는 자주 못 보는 이모들도 많이 탔다. 가는데 한 참 걸렸다.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영화가 나왔다.

 버스가 멈추고 엄마를 따라 식당에 들어갔다.

 긴 상에 맛있는 음식이 가득 있었다. 식당 아줌마가 큰 접시를 들고 오셨다.

 얼굴이 까맣고 눈이 툭 튀어나온 물고기가 누워있었다. 이모들은 상춧잎으로 물고기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잘게 썰어진 물고기 살을 맛있게 집어 먹었다.

 똥돼지가 별명인 나도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다 먹고 나서 어느 초등학교로 갔다. 운동장이 모두 풀로 덮여 있었다.

 어떤 선생님이 나와서 학교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어떤 교실(동아리방)에 들어가 뭐라고 계속 말을 했다.

 난 너무 졸렸는데 이모들은 모두 열심히 듣고 말하고 그랬다.

 다시 버스를 탔다. 이모들은 교장 선생님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난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버스가 다시 출발했고 우리는 바닷가에 내렸다. 하조대라고 했다.

 바닷가에 사람은 없고 갈매기만 많이 있었다.

 승주 이모가 맨발로 막 뛰니까 갈매기떼가 바다 위로 날아올랐다.

 갈매기들은 다른 곳에 내려앉았다. 승주 이모는 또 뛰어서 갈매기를 또 다른 곳으로 날아가게 했다.

이모가 왜 저럴까?’

 은희 이모가 내 손을 잡고 바다 가까이 가주었다. 파도가 내 앞까지 달려왔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갈매기도 보고 바다도 보니 너무 신났다.

 이모들은 계속 깔깔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문희 이모가 중국 관광객 같다고 했다.


 이모들은 오징어가 매달려 있는 어떤 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물건을 샀다.

승주 이모가 뭔가를 먹고 있길래 나도 잽싸게 가서 달라고 졸랐다.

가리비랑 낙지젓갈이라고 했다. 내가 빨간거 먹으면 이모들은 안 맵냐고 자꾸 물어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매운 떡볶인데...


 다시 버스에 탔다. 밖은 벌써 깜깜해졌다.

 밤 8시에 도착할거라 했는데 거기서 출발한 시간이 8시라고 했다.

 평창 휴게소에 들러서 저녁을 먹었다.

 내 앞에 앉은 승주 이모가 황태국밥을 먹다가 자꾸 내 잔치국수를 쳐다보았다.

 “담이야, 이모 국수 좀 먹어봐도 돼?”

 엄마가 좀 달라고 해도 안줬는데 승주 이모는 이뻐서 좀 주기로 했다.

 그런데 맛있다면서 두 젓가락이나 가져가더니 국물도 후루룩 마셔버렸다.

 ‘흥 이모 미워.’ 


 저녁을 먹고 다시 버스에 탔다.

 기사 아저씨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두곡이나 불렀다. 아저씨는 이모들에게도 노래를 부를거냐고 했다.

 버스안의 불이 다 꺼지고 알록달록한 작은 불들이 왔다 갔다 했다.

 와~~ 너무너무 신기했다.

 선주이모가 마이크를 잡고 먼저 노래를 불렀다. 버스 안이 점점 더워졌다.

 (이후의 이야기는 도로교통법에 관한 민감한 사항이라 여기서 마침.)

 오늘 너무 재미있었다.

 이모들도 다 행복해 보였다.

 다음에 이모들 따라 바다에 또 가고 싶다.









 



편지쓰고 싶은 날 소소한

2004년 3월30일

잘 가고 있지.
길을 잘 걸어라.
언니도 변덕을 부려대며
주욱 길을 걷고 있다.
하하하
승주야.
건강하자.
언제나 생각한다. (이걸 믿든 말든 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
너에게 중요하든 말든 이라고도 하고 싶지 않다.
언제나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라고 하지 않지만.
너를 늘 생각하고 있으니
내가 너를 부족하게 대했던 일이 있더라도
내가 너를 언제나 생각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우리들은 언젠가 현물적 이 세상을 떠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리웠던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허락될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죽어서 반드시 만나게 될거라고 믿는다.
만나서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몸을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꽉 끌어안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다음은 아직 모르겠다.
어떤 여행도 좋다고 생각이 된다.
거리를 옮기지 않지만
나도 여행중에 있다.
그리고 종종 나는 네가 있는 곳에 있기도 하다.
하하하.너의 스냅들을 볼 수 있다.
아마 그때가
네가 나를 생각하는 <찰라>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언니 드림


2004년 4월 15일

전 잘 걷고 있습니다.

때로는 빨리 걷기도 하고 때로는 잠시 멈춰서서 주춤하기도 하고...

어떨때는 나비처럼 훨훨 날기도 합니다.

어떨때는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도 빠집니다.

포카라에 다시 가서 트레킹을 한번 더 했습니다.

15일간의 조금은 버거운 코스였지여.

그곳에서 3일전 여기 카트만두에 와서 어제 파키스탄 비자를 받았습니다.

이곳으로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

속도라는게 이상해서 내몸을, 달리는 그 속도에 맡겨버리면

내 상상의 세계도 무한대로 확장되어 뭐든 할 수 있을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하지요.

......

내일쯤 네팔을 떠나 다시 인도로 갔다가 5월초에 파키스탄으로 갈 예정이예요.

거기서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으로 가서 배를 타고 6월 말쯤에 돌아갈까 합니다.

......


-카투만두에서 승주 드림

 


2005년 8월19일


길에서 만난 언니, 길위에 서면 언니가 젤 먼저 생각나여.

걷기 시작한 지 이틀째,
첫날은 해남에서 22킬로,
어제는 강진까지 32킬로를 걸었어여.
밤 8시가 넘은 시간, 어두워진 후에야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로 강진읍에 도착했지요.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걸을때마다 다리의 근육이 아파옵니다.
실은 아찍까지도 내가 왜 이길을 나섰나 자문해 봅니다.
제 몸에 찰거머리 처럼 딱 붙어있던 근심과 걱정이 여전히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네염.
홍홍.....
그래도 걷는 건 좋아요. 좋아.

혼자하는 여행에 익숙하지만 함께 하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과 배울점이 있네요.
그래도 여행은 홀로 하는 것이 좋지만서두.
유홍준씨가 남도의 봄빛을 보지 않고 색을 논하지 말라 하셨는데
그말에 수긍이 갑니다.
배롱나무의 백일홍과 능소화의 빛깔이 훨씬 깊고 진합니다.

음 낼모레면 보성에 도착하지요.
차밭이 보이는 숲길을 거닐게 될 거예여.
숲냄새, 나무냄새, 길냄새 담뿍 담아 보냅니다.
냄새 맡아보세요.~~~
킁킁킁~~ 좋져?


-강진에서 동생 드림




2005년 10월 12일


모든 것이 매일 변하는구나.

매일. 매일.

그것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구나.


가만가만

시간을 음미할 시간이 다시 돌아오겠지.

그때가 되면

남산 나무 아래로

차를 담아 가서

낙엽을 융단처럼 깔고

햇빛과 가을을 즐기자.



2016년 3월 22일


나는 승주를 만났고

우리가 그저 스쳐지나지 않고

지금껏 서로를 왕래하고 있으니

우리의 인연, 소중하다고.

더욱 시간이 오래되어 더욱 소중해지길 바란다고.

전합니다. ^^


우리에겐 서로가 모르는 시간들이 턱없이 많지만

우리가 읽던 그 시처럼 물길이 오고 가듯,

그렇게 어울려 흘러가고 싶어요.


-언니 드림



얼마 전,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란 책을 읽었다.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 폴이 2년간 주고 받은 소통의 기록.

'재미있고 포근하고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사이의 이야기''


나에게 처음 마종기 시인의 시를 읽어준 언니가 생각났다.

길에서 만나 길위에서 무수히 많은 편지를 주고 받은 언니.

서로에 대한 애정과 햇살 같은 위로와 격려가 담긴 글.

그 '사이'의 글은 그 어떤 글보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진실하다.

아기의 속살처럼 말랑하고 순수하고 어여쁘다.


언니가 읽어준 '우화의 강'은 내가 암송하는 시 중 하나.

오늘은 언니에게 마종기 시인의 '바람의 말'을 읽어주고 싶다.

다시 많은 편지를 쓰고 싶다.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로드킬 소소한


아랫집 언니와 함께 아침 산책에 나선 어느 날,
버드나무 앞을 지날 때 죽어있는 두더지를 보았다.
내 손바닥만 한 새까만 두더지가 아기 손 닮은 허연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인형처럼 누워 있었다.
아랫집 언니가 나뭇가지를 찾아서 두더지를 풀숲으로 옮겨주었다.
우린 두더지를 마른 풀로 덮어주었다.

경사진 길을 내려와 강둑길로 접어들었다.
바람에 풀이 일렁이는 소리,
마른 풀냄새, 쌀이 익어가는 냄새, 물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조금 걷다가 이번에는 둥글게 몸을 말고 죽어있는 초록뱀을 보았다.
뾰족한 머릿밑에는 배가 터져서 내장을 다 들어낸 개구리 한 마리가 있었다.
개구리를 잡아먹는 도중에 죽은 것 같았다.
나뭇가지 두 개로 뱀을 집어서 길옆으로 휙 던져버렸다.
뱀의 촉감이 나뭇가지를 통해 온몸으로 전해졌다.
꺅 꺅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날 아침에는 버스를 놓친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도로 한가운데에 죽어있는 고양이를 보았었다.
마침 오후에 유치원 미술수업이 있어서
목장갑과 삽을 챙겨서 학교로 향했다.
간밤에 죽은 고양이는 오후까지 여전히 도로에 쓰러져 있었다.
길 옆에 차를 세워 놓고 목장갑을 낀 다음 고양이 곁으로 다가갔다.
통통하게 살찐 큰 얼룩고양이었다.
자동차 바퀴에 얼굴이 깔린 것 같았다.
길 옆으로 사체를 옮겨야 하는데 쉬이 손이 가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인 후에야 간신히 두 다리를 붙잡을 수 있었다.
양손으로 옮기는 내내 엄청난 비명을 질러댔다.
영혼이 빠져나간, 굳어버린 사체의 느낌은 너무나 기묘했다.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고양이를 묻어 주려했는데
어디에 고양이를 치웠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차를 몇번이나 돌려서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직도 고양이 얼굴이 눈에 선하다.
전날 밤 안개가 심하게 끼었었는데,
아마도 그날 밤 길 위에서 운명을 달리한 동물이 꽤 많았을 것이다.




 


  

요즘 만화 영화들 바람의 아이들


삼 일간 아이들과 집안에서 지지고 볶고, 콩가루 될 뻔했다.
산책하러 가자고 꼬드겨도 이제 내 말은 코빼기도 안 듣는다.
집안에 콕 박혀서 만화만 본다.
너희들 벌써 이러기냐?
"얘들아 인제 그만 봐라."
아무리 말해도 만화 속에 영혼이 뺏긴 얘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때 만화 참 많이 봤는데....
들장미 소녀 캔디, 제니, 빨강 머리 앤, 은하철도 구구구, 미래 소년 코난, 로보트 태권브이...
그 수많은 만화 속 장면과 주인공들이 내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가?
아이들이 만화에 빠진 걸 무조건 막아선 안 되겠는데
문제는 그 만화의 내용이 영 마뜩잖은 거다.
한동안 터닝메카드에 빠져 있더니 요즘에는 프리즘 스타랑 아이엠 스타만 주구장창 본다.
중학생 나이 정도의 소녀들이 기숙학교에 다니면서 아이돌 스타를 꿈꾸는 내용.
요즘 자매가 이 만화의 음악을 틀어놓고 걸그룹 소녀들처럼 춤추고 노래를 부른다.
왜 요즘 나오는 만화들은 다 이 모양이란 말인가?
내가 가려서 좋은 것만 따로 보여주기엔 이미 늦어 버렸다.
아이들이 이미 포털에서 제공하는 만화 콘텐츠에 익숙해져 버린 것.
이것도 다 한때 이려니 하고 당분간 지켜보는 수밖에.



블로그에는 나홀로 수다를...
페이스북에는 짧은 글과 사진, 그림을 올리고 있다.




지오의 시 바람의 아이들


추석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라디오에서 '엄마의 사랑이 어떻고 반찬이 어떻고' 하는 사연이 흘러나왔다.
"엄마, 나 시 하나 생각났어. 집에 가면 적어줘야 해," 
집에 와서 지오의 시를 받아 적었다.
아무래도 시인으로 등단시켜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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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랑 반찬    (9월15일)

나는 엄마의 반찬이 맛이 있어 보였다.
엄마가 해 준 반찬 중에서 국을 먹으면 무슨 생각이 든다.
엄마의 반찬은 언제라도 맛있어 보였다.
엄마가 해 준 고기를 먹으면 이런 느낌이 든다.
엄마가 만들어준 반찬은 언제라도 소중한 것.
엄마가 해 준 반찬 중에서 모든 반찬들을 먹으면 이런 느낌이 든다.
엄마는 언제라도 우리 곁에 있으니까 정말 고맙다.
엄마는 어디서나 나를 보호해 주고 언제라도 아껴준다.
엄마는 언제라도 내 곁에 나를 보호하고
언제라도 함께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언제라도 우리 곁에 있어 주고
우리를 언제라도 우라랑 함께 즐겁게 죽을 때까지
즐거운 설날도 즐겁게 맞이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
엄마는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가 정말 소중해요.


이 시를 불러준 그 날 저녁,
맛있는 반찬이 없다며 반찬 투정을 했다.
이 시를 들이대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자
그건 그냥 시일 뿐이라며 일축하는 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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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희망          (9월 16일)

너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어.
너에게 빛나는 미소와 사랑과 희망으로
너에게 별빛과 미소가 되었으면
하고 싶은 너의 희망으로
너에게 미소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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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며칠 전에 불러 준 지오의 동화

제목:설날 인형
구술:지오(한글 못 씀)
대필:엄마(지오가 부르는 대로 적음)



오늘은 설날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무덤에 모여서 떡국을 먹었다.

그리고 절도 했다.

그때 쾅 어딘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나는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신발이 보였다.

하지만 그 신발은 사람도 없고 혼자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정말 신기해 보였다. 갑자기 신발에 얼굴이 올라왔다.

그건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한번 물어보았다.


 "너는 누구니?"

 "나는 인간이 아니야. 나는 설날 인형이야."

그건 그냥 설날 인형이었다.

나는 무척 신기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인형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가서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인형을 데려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인형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놀기도 하고 같이 지내기도 하고 책도 보았다.

나는 그날이 매일매일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후 어느날 나와 그 인형은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인형이 또 우리집에 놀러왔으면 정말 좋겠다.

그래서 그런 후 그 인형과 나는 약속을 했다. 그 인형은 약속을 지켰다.


이미지: 그림

이 그림이 설날 인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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