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경 작가와의 만남 솔멩이골작은도서관

(작가와의 만남 후기)

 옆집 할아버지한테 몇 시인지 물어보러 갔다가 닭 구경하고 개미 구경하고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분꽃 따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온 이야기.
‘넉점반’의 능청맞은 아이를 익살스럽게 그려낸 이영경 작가님이 솔멩이골에 오셨습니다.


 1시쯤 도착해 ‘꿈터’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두 시에 강연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12시에 전화가 걸려왔어요.
“저희 여기 벌써 도착했는데요.” ...
작가님 모시고 먼 길 달려온 사계절출판사 편집자님 목소리.
‘뜨아~~안돼!! 이럴 수가. 이제부터 준비하려고 했는데.’
바로 꿈터로 튀어가서 맞은편 마을 카페에 두 분을 모셔 놓고 괴산 두레학교 할머니들 그림책을 건네 드린 뒤 강연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커다란 창에 검은 종이 붙이고, 손으로 쓴 글자 현수막 붙이고, 전기밥솥에 밥 안치고....곁에서 8살 난 딸내미가 다급한 어미 맘을 알아챘는지 척척 잘 도와주네요.
그 사이 동네 아낙들이 하나둘 도착했고 두 분을 모시고 솔멩이골도서관을 둘러보고 돌아오자 풍성한 점심상이 뚝딱 차려져 있었어요. 각자 챙겨온 다양한 반찬과 꿈터 부엌에서 바로 만든 달걀말이,연잎밥, 곤드레나물밥......
역시 밥심이예요. 수다를 곁들이며 함께 먹는 밥 한 끼로 어긋난 상황은 종료되고 작가님과의 훈훈한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익숙한 일상이 상대방에겐 흥미 있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요. 동네 논에 서식하는 투구새우 이야기, 올챙이, 도롱뇽 (동네 할아버지들이 정력에 좋다며 도롱뇽 알을 손으로 퍼 드신다는 얘기는 저도 첨 들었네요.) 마을 아낙들의 일상다반사를 재미있게 들어주신 두 분.

 

 식사 후에는 작가님의 이야기 속으로 쏙 빠져들었지요.
‘봉지공주와 봉투왕자’를 어쩜 그리 재미나게 읽어주시던지. 어른들이 그림책 들으며 그렇게 깔깔 웃는 모습 처음 보았습니다. 출판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노래까지 만들었다며 우쿨렐레를 튕기며 노래하는 유튜브 영상 속 작가님 모습도 너무 귀여우셨어요.
‘넉점반’이 태어난 배경과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며 이 책이 많은 이들의 사랑과 공감을 받는 이유도 알게 되었지요. 작가님의 성실한 취재와 애정 어린 눈길이 없었다면 책 구석구석에 녹아있는 그 시절 농촌 풍경이 이렇게 정감 있게 나올 수 없었다는 사실.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란 문장에서 옆집 할아버지와 아이 집의 지리적 위치를 화면에 담아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셨다는데요. 그토록 여러 번 봤음에도 이번에 새롭게 눈에 들어온 건 바로 두 집을 연결하는 또랑과 작은 다리였습니다. 바로 또랑물을 그리고 싶었다는 말.
아, 또랑물이라니요. 예전에 아낙들이 모여 빨래하며 이야기 나누던, 집과 집 사이에 다정하게 흐르던 작은 개울. 그림책 속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온종일 자기 세계에 빠져 놀던 아이는 저 작은 다리를 사뿐히 건너 바로 옆 제집으로 돌아가지요. 혀를 내밀며 반갑게 문밖으로 마중 나온 강아지와 부채질하며 아이를 흘끗 바라보는 할아버지, 심부름을 완수한 뿌듯한 표정의 아이. 새롭게 눈뜬 자의 시선으로 모든 그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형으로 하는 일인극을 좋아해서 체코와 프랑스까지 가서 인형극 워크숍에 참가했다는 이야기, 취재차 잠시 갔던 연변에 이끌려 아예 짐을 꾸려 일 년간 가서 살았던 이야기, 일본 작가가 그림을 의뢰한 티베트 옛이야기 그림을 위해 티베트로 취재 간 이야기(그것도 한겨울에 티베트라니. 예전에 나도 겪어봤던 그 혹독한 추위와 고소증!!)
작은 체구로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모습과 달리 작가님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하며 연신 흘러나왔습니다. 이런 얘기 또한 아주 자분자분 들려주시네요.

귀엽고 능청스럽고 때론 익살맞은 아이.
가까운 거리도 빙빙 돌아 자기만의 여행으로 전환할 줄 아이.
알 듯 모를 듯 무표정 속에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자기만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한 아이.
넉점반에 나오는 이 아이가 이영경 작가님, 바로 자신의 투영이라는 사실을 이번 강연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완전 자격 미달인 제가 도서관 관장이라는 권한으로 이런 작가님을 모실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지금까지 먼 길 마다 않고 솔멩이골작은도서관에 와주셨던 모든 작가님들께 감사드리고 싶은 하루였네요.

결국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계획한 일이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계속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이야기는 나침반이고 건축이다.
우리는 이야기로 길을 찾고 성전과 감옥을 지어 올린다.
이야기 없이 지내는 건 북극의 툰드라나 얼음 뿐인 바다처럼
사방으로 펼쳐진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







봄의 아이들 그림일기







한때 아이들은 이맘때면 맨손으로 흙을 파헤쳐서 달래와 냉이를 뜯곤 했다.
한때 나는, 아이들과 뜯은 냉이와 달래로 날마다 튀김을 하고 쑥 된장국을 끓여냈다.
지금의 아이들은 “싫어. 꼭 가야 해? 그러라는 법이 있어?”라며
쑥 좀 뜯자는 내게 무지 따지고 든다.
이제 휴대폰과 컴퓨터를 더 사랑하는 나이가 되었다.


오월이면 주먹밥 같은 불두화 꽃 한 덩이 따서 길에 뿌리며 즐거워하고
유월이면 입안 가득 오디랑 앵두 열매 집어넣고 오물거리던 아이들.


저 싱싱한 초록의 풍경 속에서 그림책 같은 장면을 연출하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뇨?


꽃 피고 지고, 열매 맺고, 땅으로 돌아가는 사이 아이들도 쑥 커버렸다.
아직 더 그 풍경 안에 머물고 싶은 건 내 욕심인가?
그래도 오월이 오면 아랫집 할머니네 담장 밖으로

 커다란 불두화 나무가 흰 꽃을 피워낼 거다.
열매가 익어가는 유월이 오면 오디랑 앵두도 열릴 것이다.

아이들이랑 좀 더 열심히 놀아야겠다.
더 커서 이젠 안 놀아 준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4월 15일 페북에 올렸던 글)



페북, 인스타, 블로그에 뭔가를 적긴 하는데 

쓰다보니 이 세가지의 변별 기준을 나도 모르겠구나.

정리를 좀 해봐야겠다.







시골집 소소한




십 년 전, 결혼과 동시에 시골에 내려와 살았던 첫 집.
첫째 아이 출산하고 친정에서 산후조리 하고 있을 때 불이 나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 집에서 채 일 년도 살지 못했지만 집에 대한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마치 새들만 사는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우물가 옆의 앵두나무.
뒤뜰에 피어있던 모란과
비 온 뒤 거미줄에 옥구슬처럼 달린 이슬방울.




마을 주민 책만들기 프로젝트의 첫 번째 이야기는 집이다.

솔멩이골에 내려와 처음 만난 내 집 이야기.


(어째 저 그림은 정목수 머리카락이 아닌 목을 자를 기세로군.)






도서관 소식 솔멩이골작은도서관


(솔멩이골작은도서관 밴드에 올린 글)

 

도서선정 위원을 모집합니다.

우리도서관에서 구입할 책 목록을 선정하고,

일이 있을 때 도서관에 모여서 논의하고 결정하는 일을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이번에 군청에서 도서구입비 오백만원을 받게 되었어요.

4월 초에 돈이 들어올 예정이고 7월 안에 써야 한답니다.

도서선정위원이 만들어지면 원하는 분야를 선택해서 30권 정도의 추천 도서목록을 받을거예요.

분야에 상관없이 목록을 작성 해주실 수도 있구요.

오백만원 지원금이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도서관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또 하나, 솔뫼농장 사무실로 쓰던 공간을 도서관에서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제 생각엔 그 공간에 책장(책 전면이 보이게)을 짜 넣고 이번 지원금의 절반 이상을 아트북과 팝업북,

그림책 등을 사는 데 쓸까 합니다. 개인이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의 책들이지요.

그림책 전문서점에 가면 침만 흘리게 하는 책들이 많거든요.

어차피 우린 공간이 좁으니까 단행본을 다량 구입하는 것 보다는 이런 책을 구비해서 따로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 싶어서요.

(지난번 숲속작은책방 백창화 선생님 강연 때 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책이 가진 미학적 측면을 한껏 뽐내는 그런 멋지고 우아하고 품위 있는 책들을 전면이 보이게 배치하고 싶습니다.

이것도 제 생각인지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줄 도서선정위원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괴산에 9군데 작은도서관이 있는데(한 곳은 올해 폐업 신청) 일 년에 세 군데를 담당 직원이 선정해서 지원비를 주는 거래요.

작은도서관 운영실태 보고서를 작성해서 연말에 한 번 제출하는데 그 자료가 선정 기준이 되는 것 같아요.

실적 보고 잘 하면 2,3년에 한 번씩 도서구입비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서선정위원 (6인 이상 모집)

할 일 -1년에 2회 추천 도서 목록 20~30권을 작성한다.

-일 년에 2, (또는 시급히 결정할 사항이 있을 때) 모여서 회의한다.

-도서관 대청소시 시간과 노동을 기부한다.

(4월 초에 농장 사무실 집기 처리하는데 보태줄 힘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댓글 기다립니다. ^**^




명함을 하나 만들어야겠다.
솔멩이골작은도서관 관장이라는 직함을 꼭 넣어야지.
마을주민들이 만들어 8년간 운영해온 기적같은 도서관.
바라건대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 이름을 간직하면 좋으련만.
이렇게 도서관을 운영하는게 과연 옳은건지.
때로 힘이 부치는구나.












하지 말라는 것 많은 담임샘 바람의 아이들


1학년이 된 지오가 학교 다녀와서 하는 말들.

 

엄마 선생님이 손으로 코딱지 파지 말래.”

엄마, 선생님이 젓가락질 연습해오래.”

엄마, 선생님이 연필 똑바로 잡아야한대.”


나린이 1학년 담임샘이기도 했던 **선생님은 보기에도 딱 사감스타일이다.

아이들이 본인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못 견뎌하시고 언제나 규칙을 중요시한다.

여러면에서 나와는 정반대다.

지오의 말에 처음엔 뒷목이 아파왔지만

어찌보면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간과한 부분을 지적해주시니까. (좋게 생각하자구.)



 "그럼 코딱지는 선생님이 안보이는 데서 파.

 손가락이 가진 수많은 기능 중 하나는 코딱지를 파기 위함이야.

 아마 선생님도 아무도 안보는 데서는 코딱지 팔 걸."


 "젓가락질은 자기가 편한대로 해도 돼."


 "아니야, 나 연습할거야. 이렇게 하면 돼? 근데 잘 안집어진다."


 지오는 네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감싸쥐고 잡는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먹어왔는데....


 "그래 그럼 이렇게 연습해봐."


 "근데 너 연필은 어떻게 잡았지?"


 지오는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 연필 윗부분을 잡는다.

 나도 처음 알았다.

 그래도 글씨만 잘 쓰고 그림도 잘만 그렸는데....


 여기까지는 그려려니 이해하고 넘기기로 했다.


"선생님이 또 하지 말라고 한 거 없니?"


 "어.똥은 아침에 집에서 싸고 오래. 학교에서 싸지 말래."

 

뭐라고???

이런!! %^&*$#@






연욱이네집 바람이 머무는 집


연욱이는 나린이랑 같은 반 친구다.

위로 중학생 누나랑 일곱 살 여동생이 있다.

두 살 때 아토피가 너무 심해서 분당에서 이사 온 아이다.

항상 피딱지와 고름으로 얼룩져있던 그 당시 연욱이의 얼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연욱이네 가족은 오래된 흙집을 아주 조금만 고쳐서 이사 왔다.

남들이 대대적인 집수리를 하거나 새집을 지어 이사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이 작은 흙집에서 다섯 식구가 살고 있다.

여름이면 비가 새고 겨울엔 벽사이로 바람이 슝슝 들어오지만 햇살 한가득 들어오는 마당만큼은 그 어느 새집 안 부럽다.


마당 앞 반석위에 앉아 긴 빨랫줄에 걸린 옷들 사이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때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번듯하게 새집 지어 이사 온 우리집 마당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이다.

보통 대지보다 집을 높게 올리고 방풍을 위해 덧문을 달거나 현관 앞에 데크를 두는 현대식 집구조가 아닌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리라.

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다.

집과 땅의 단차가 거의 나지 않아 마치 그대로 땅위에 앉아 있는 느낌, 그래서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집 주변을 감싸고 있는 낮은 돌담도, 곧 허물어질 것만 같은 헛간도 내 눈엔 다 멋져 보인다.


"언제 집 짓냐?

 예윤이도 이제 중학생인데 방 하나 따로 마련해줘야지.

 언제까지 다섯 식구가 그 좁은 방에서 같이 잘 거냐?

 여름에 폭우 쏟아지면 언제 집 허물어질지 모른다...."

 

등등 이웃들은 이 집 얘기만 나오면 한마디씩 한다.


집 안주인도, 아이들도 이 집을 닮았다.

큰 불만없이 이 마당에 가득 고인 햇살처럼 흙처럼 편안하고 따뜻하다.

바라건데 조금 튼튼하고, 많이 춥지 않고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아이들 커서 독립하고 언젠가 홀로 지내게 된다면.....   


지난주 토요일 마을 주민 책만들기 수업을 하는 동안 아이들을 연욱이네 집에 맡겼다.



오전에 가서 놀고, 점심으로 연욱이 엄마가 끓여준 라면을 잔뜩 먹고 마당에 나와 저녁까지 또 논다. 


아궁이 수리하고 남은 벽돌이 헛간 옆에 쌓여 있었나보다.
그 벽돌로 나린이는 화덕을 만들었다.
위에 솥이라고 올려 둔 건 이 집 강아지 '번개'의 밥 그릇.

여린 봄쑥이 올라왔다.

이번엔 연욱이와 함께 아궁이를 만든다. 


동생들은 열심히 벽돌을 나른다.

"야 더 가져와."

언니 오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척척 날라주는 꼬마 벽돌쟁이들.


진지하게 아궁이 구조에 대해 상의 중.

이제 땅파기 놀이에 돌입했다.


땅파기 고수는 단연 연욱이다.
이 자리는 연욱이가 어릴 때 이미 파 놓은 구덩이.
엄마가 밤에 지나다가 빠져버려서 메꿔 놓았는데
아이들이 다시 파기 시작했다.
땅 속에서 연욱이가 묻어 둔 온갖 것이 다 나왔다.
건전지, 장난감 자동차, 소라 껍데기, 구슬....
 
연욱이네 뒷 집에 놀러온 여자아이도 합류했다.
나린이, 연욱이랑 같은 학년이다.
청주에 사는데 식구들이랑 할아버지네 놀러왔다고 한다.
마당만 기웃거리며 아이들 주변을 탐색하다가
어느 순간 함께 땅파기 놀이에 빠져버렸다. 

도대체 어디까지 팔라고?

집에 안 간다해서 저녁에 다시 데리러갔다.
그 사이 아이들은 냇가에 가서 신발을 홀딱 적셨고
집 앞 느티나무 군락지에서 나무와 함께 놀았다고 한다.

나린이는 놀다가 다친 상처를 보여주었다.
손바닥에 피가 났고, 무릎, 허벅지에 멍이 들었다.
가시도 여기저기 박혔다.

 아직 이렇게 놀아 주어서 다행이다.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냥 아이들이 고맙다.








지오의 일기 바람의 아이들


저녁을 먹고 식탁에 앉아 각자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엄마, 나 노트북으로 일기 쓰면 안 돼?”


뜬금없이 지오가 물었다.

초등학교에서 이제 겨우 선긋기 연습을 하고 있는 아이가 일기를 쓰겠다니.

그것도 노트북으로?

언니한테 배웠는지 유치원에서 배운건지,

어쨌든 지오는 나도 모르는 새 글자를 깨쳤다.

집에서 혼자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며

스케치북 한켠에 짧은 글을 적기도 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기를 쓰겠다니.


넌 아직 일기 안 써도 돼.”

언니도 매일 쓰잖아. 나도 쓸래.”

그럼 공책에 써도 되잖아.”

엄마도 노트북에다 쓰잖아.”


그래, 뭐 쓰겠다는데 말릴 필요 있겠냐 싶어서 노트북을 열어 주었다.

아무도 못보게 노트북 화면을 가린 채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글자를 써 내려간다.



엄마, 2발 자전거는 숫자로 2발이라고 써? 아니면 한글로 두발이라고 써?”

엄마, ‘가 맞아. ‘가 맞아?”

엄마, 예전에 라고 하면 내가 7살 때를 말하는 거지?”

엄마, ‘저번에라는 말 말고 좀 더 좋은 말 없을까?”

  끊임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뭐란 말이냐? 이 질문의 내용은...'

벌써부터 이렇게 문장력을 따지고 들다니.


대체 뭐냐? 너란 아이.


"엄마, 다 됐어. 이제 봐도 돼."



언젠가 '작가 지오' 라는 이름을 단 작품을 기대한다.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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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가 일기를 쓰고 있을 때 난 그 옆에서 뭔가에 골몰해 있는 중이었다.
당장 낼모레부터 시작해야하는 마을주민들 책만들기 수업.
드로잉만 하면 수월한데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서 책으로 엮어내야하니
첫 시작을 어떻게 하고,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끌고 가야할지
몇날며칠째 고심중이다.

어제 이 마을 출신이기도 한 백** 선생님이 세 시간 정도 글쓰기 강연을 하셨다.
 그 수업 이후 지금까지 내내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됐다.
기자 출신에다 주로 대기업에서 실용 글쓰기 강연을 많이 하시는 강사님의 강연이
내가 생각한 이 수업의 의도와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강사님 이력이 워낙 화려해서 내가 가진 의문과 불편함의 이유를 찾아내는데 한참이 걸렸다.


수업은 총 25강.
정해진 프로그램 계획안은 아직 없다.
눈뜨고 있는 일분 일초 모든 시간동안 온통 이 수업에 대한 생각뿐이다.
온갖 글쓰기관련 책들을 다시 보고 있다.
여하튼 앞으로 이 수업과 관련된 모든 것을 무작정 기록해 볼 작정이다.
위에서 언급한 불편함의 이유도....

 




어떤 사이 소소한



내 첫 책이 나왔다고 블로그에 올린 다음날, 그러니까 8년 전 5월 어느날.

 

서평만 읽어도 막 기대되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여행 서적인 것 같습니다!

당장 사 볼게요! 저도 바람풀님처럼 인생에 둥지 틀 곳을 언젠가 만나게 되겠죠? ㅎㅎ

좋은 책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것이 홍지양과의 첫 인사였다.

그 후로 그녀는 내 블로그에 가끔 안부 글을 남겨주곤 했다.

며칠 전 자신의 책이 나왔다며

내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댓글 역시 이곳에 남겨 주었다.


우리는 얼굴도 연락처도 모른 채 그렇게 8년간 소통해 왔다.

그녀가 주로 내게 안부를 묻는 식이었다.

댓글로 책 잘 읽었다는 마음을 표현해주었고,

포스팅한 글에 대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생각해보니 그녀가 무얼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난 알지 못했다.

어디론가 자주 여행을 다닌다는 것 외 엔.

그녀야말로 바람풀 같았다.


오늘 그녀의 책을 선물 받았다.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중간 즈음. 점처럼 찍혀 있는 작은 섬나라, 페로제도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내 역마살과 탐험 기질을 심히 흔들어놓는 글과 사진.



책을 통해 그녀의 근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작년에 독립출판사를 만들었고,

뚝딱뚝딱 일 년에 열권씩 만들어 십 년 후에 내가 만든 책 백 권 쌓아

책 트리 만드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는  홍지양 


미안하고 고마워요.

책 출간도 많이 많이 축하해요.

그대의 멋진 꿈도 응원합니다.

제가 곁에서 지켜봐 줄게요.


언젠가 꼭 만나길 바랍니다.





(아조레스제도 탐험기)랑 (파타고니아 탐험기)도 기대합니다.
그땐 꼭 사서 볼 거예요.









귀촌 10주년 기념 프로젝트 소소한


올해로 귀촌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도시에서 내려온 이웃이 꽤 늘었고, 함께 울고 웃으며 잘 지내왔다.

언제부턴가 그런 이웃들의 별별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곤 했다.

니어링의 후예를 꿈꾸며 내려와 좌절한 이야기,

새벽부터 밤늦도록 농사지어도 별반 나아지지 않는다며 한탄하던 동네 언니들 이야기,

작물을 심었다가 고라니랑 두더지에게 홀딱 뺏긴 이야기,

한해 농사를 홀랑 망친 이야기,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제 자식처럼 마을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도시의 문화생활 부럽지 않게 다양한 문화 인프라를 구축해낸 별별 이야기.

밥숟가락 몇 개인지 알 정도로 맨날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들.

토종 종자를 지켜온 **언니,

바느질하고 수놓는 ** 언니,

마을 사람들 두루두루 챙기는 오지라퍼 **언니,

남편과 티격태격하며 오만가지 농사 다 짓는 **, 

그들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직접 써서 글과 그림으로 책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여름, 동네 무인카페 아낙에서 이런 생각을 말했을 때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던 아랫집 언니가

 그거 하면 되지 뭐. 걱정하지 마, 돈은 내가 어디서 끌어 올게.”

그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마을주민들과 드로잉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 일이 이렇게 빨리 실현될 줄이야.

올해 충북문화재단 지역특성화 지원사업에 아랫집언니가 기획안을 휘리릭 써내서 당선됐다.

면접 심사에 25분이나 지각했는데 말이다.

가는 동안 왜 안 오냐는 전화를 두 번이나 받았고,

도착해보니 심사위원 세 명과 지원자 두 팀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좌석 배치.

(저러고 25분이나 우릴 기다렸단 말이지.)

화장실이 무척 급했지만 바로 면접장으로 직행. 면접 내내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다행히 아랫집 언니의 뛰어난 언변으로 면접을 마쳤으나 그때도 반신반의했는데.....

올해 천오백만원을 지원 받아 마을 주민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 세상의 모든 드로잉" 

오지라퍼 아랫집 언니, 훌륭하오!

 

내 귀촌 10주년 기념 프로젝트가 될 듯.

한 해동안 사람들 이야기속으로 즐겁게 들어가 봐야겠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축복 같아요.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고 들려줄 줄도 아니까요.

우리 마음속 이야기는 누구보다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진심어린 편지 같아요."


- 땀의 편지글 중에서






여보. 내가 박보검처럼 그려줄게.”

송면중 교감샘을 그리는 **언니.

박보검 보다 더 멋지게 그렸지요.

이제 곧 손자를 볼 나이지만 언제나 소녀 같은 귀여운 언니.




붉나무를 그리고 있는 **언니.

이거 소금나무라고도 해.”

언니와 산책하면 풀과 나무와 이 마을의 역사에 대해 주워듣는 이야기가 참 많다.

내가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 언니는 두 살 된 다섯째를 등에 업고

집 짓는 인부들의 밥과 참을 지어주고 있었다.

노란 고무줄로 천기저귀를 차고 맨발로 걸어 다니던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그 아이를 데리고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던 언니 모습이 생각난다.

산골짜기 옹달샘에서 아이의 얼굴을 씻기고 길도 없는 산속으로 사라지던,

순한 짐승 같던 언니의 뒷모습.





농사 짓고 솔뫼농장 가공 공장에도 출근하며 삼남매도 뚝딱 키워낸 **언니. 

지난 겨울, 가족들과 미얀마 여행을 다녀와서 작은 드로잉북을 수줍게 보여주었다.

여행지에서 본 풍경과 에피소드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드로잉북이었다. 








줄줄이10주년 소소한



여권 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갔다.
여권 유효기간이 10년 이니까
사진관에 간 건 딱 10년만이다.
10년 전에 신혼여행 가기 위해 만들었으니
올해는 결혼 10주년이 되는 해요,
결혼과 동시에 괴산에 내려왔으니
귀촌 10년 차에 접어든 해이기도 하다.
줄줄이 10년이네.

10년 전에 쓴 블로그 글들을 보았다.
 이거 내가 쓴 글들이 맞나?
내가 이랬었나?

오후 햇살 듬뿍 받고 하늘거리는
연두빛 잎사귀 같은
그 순하고 상큼 담백한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 몸의 적혈구들은 4개월마다,
피부세포들은 몇 주마다 완전히 교체되며
약 7년이 지나면 내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가
다른 원자로 교체된다고 하는데.
따라서 물리학적으로 보면 당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당신이라고
어떤 뇌과학자가 말했다.
(데이비드 이글먼-더 브레인)
다양한 내 버전들 모두를 연결해 주는 상수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기억.
나를 나로 만들어주며 연속적인 자아감을 제공하는게
바로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10년 전 나는 내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때 썼던 글과 사진, 그림들이 모두 새롭게 느껴지는 걸 보니.

30분 후에 찾은 사진 속 내 얼굴.
깊게 패인 주름이 안쓰럽다.
그래 이건 내가 알던 내가 아니다.



10년 전에 그렸던,
블로그에 올린 강아지 그림을 다시 그려봤다.

(효리가 연필 파스텔로 그린 거 보고 나도 따라 그리고 싶어졌다.)

이웃집 새끼 강아지랑 학골에서 만난 강아지.   

옆에 있던 지오가 한마디 한다.

"엄마 엄청 못 그렸다. 효리언니 보다 더 못 그렸어."

효리언니가 그린 개들은 언니가 좋아하는 반려견들이고
재들은 내가 첨 본 애들이어서 그래.히잉~~
여러모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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