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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바람에 기대어 편지

오월의 바람에 기대어 오랜만에 안부전해요.

잘 지내고 있죠?

햇살과 바람만으로도 너무나 충만한 계절, 오월.
걸치고 있는 것들 훌러덩 벗어던지고 서 있으면
사르르 녹아버려 한줌 햇살이 될 것만 같아요.
산길을 걷노라면 숲속 나무들이 자꾸만 주술을 걸어와요. 
아무것도 걸치지 말고 우리 사이에 들어와 손잡고 서 있자고.
언젠가 못이기는 척 그 유혹에 넘어갈지도 몰라요.
상상만 해도 참 민망하네요.

올해는 젊은 이웃들이 많이 생겼답니다.
아이들이 자꾸만 줄어드는 바람에 마을주민들이 대책을 강구했지요.
주민들의 요구에 군에서 초등학교 옆에 공동주택을 지어주었고 11가구가 들어왔어요. 
학부모 동아리도 많이 생겼어요. 
영어, 트레킹, 제로웨이스트, 요리 등등 
제가 동아리를 세 개나 들었지 말입니다.
전 트레킹 동아리 반장이에요.
네 명의 마을 새내기 엄마들과 목요일 아침에 만나 세 시간정도 걸어요. 
이맘때 걸으면 좋겠다 싶은 곳으로 제 맘 내키는 대로 안내해요.
 

괴산에 정착하기 전 화양계곡 파천에 다녀간 적이 있어요. 
마리학교 교사로 있을 때 학생들 데리고 이곳에 캠핑을 왔지요 
초여름 밤이었어요. 
‘자연학습원’ 지도교사를 따라 아이들과 함께 계곡길을 걷다 반딧불이를 봤어요.
초록광선이 너울대던 그 밤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지요
어둠속에서 듣던 계곡 물소리는 어찌나 차고 싱싱하던지.
삼십분 정도 걷다가 샛길을 따라 파천이란 곳으로 내려갔어요.
반질반질한 너럭바위가 달빛을 받아 뽀얗게 빛났지요.
부드럽고 따뜻한 바위의 감촉과 어둠을 가득채운 물소리.
그 기억이 선명해요. 
‘이곳에 꼭 다시 와야지 .’ 
그때 했던 다짐이 너럭바위만큼이나 단단했나봐요.
제 일상의 산책로가 되었으니 말이에요.


가끔 파천에 올 때면 생각했어요.
반딧불이가 춤추는 초여름밤이 되면 이곳에 와야겠다고.
보름달 뜬 밤에 
하늘거리는 하얀 원피스 입고
너럭바위에 서서 맨발로 춤을 추자고.
몸에 열이 오르면 원피스를 벗어버려야지.
알몸이 되어 저 바위에 몸을 뉘어야지.  
한낮의 온기를 품은 바위는 날 은근하게 감싸주겠지?


이건 쫌 멋질 것 같지 않나요? ^^
아직까지 시도를 못했어요. 
어쩌면 올여름에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마을트레킹 때 제 옆에서 걷던 H동생에게 이 말을 해줬거든요.
일주일 뒤에 함께 걷는데 이 동생이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언니 저 생각해 봤는데 파천에서 밤에 옷 벗고 춤추고 싶어요.”
“하하하” 빵 터졌지요.


밀양에서 살다가 2월에 이사 온 친구예요. 선유동 계곡을 걸을 땐 연신 감탄하더라구요. 
우리나라 여러 지역을 다녀봤는데 이런 멋진 바위가 있는 계곡을 본 적이 없다고.
내심 과장이 지나치다 싶었는데 저도 모르게 그 익숙한 풍경을 다시 보게 되더라구요. 

“언니 인도 다녀왔다고 했죠? 
함피 가보셨어요? 거기 바위가 생각나요.”

아, 함피라니.
선유동 계곡을 걸으며 함피를 떠올리게 될 줄이야.
기억 저편에 봉인되었던 풍경이 보따리 풀리듯 활짝 펼쳐졌지 뭐예요.
마치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불가사의한 느낌의 그 곳.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기묘한 산. 
제 블로그를 찾아보니 그곳에서 언니에게 쓴 편지글이 포스팅되어 있네요.
사진을 보다가 그 친구 말에 뒤늦게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어쨌든 이번 여름엔 제 오랜 염원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을 들려주며 새로운 이웃과 함께 걷는 시간이 좋습니다.
한참을 걷고 나면 계곡물에 꼭 발을 담가요. 
네발로 기면서 바위를 핥고 코를 킁킁대지요.
이 암석들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저 물은 언제부터 흐르기 시작했을까?  
그 생각을 하면 마치 갈라파고스의 파충류가 된 것만 같아요.


눈부신 신록과 맑은 물, 
바위가 주는 서늘한 감촉,
곁에 있는 사람들.
지금 이 순간을 생생하게 느껴봅니다.


언젠가 우리의 긴긴 산책도 기대하며
괴산에서 동생 드림

우리마을 트레킹동아리 아무튼 기록


4얼 21일 목요 트레킹 첫번째
-선유동 계곡~ 제비소


양말을 벗고 바위에 납작 엎드렸다.
차가운 바위 냄새가 나를 아주 먼 과거로 데리고 갔다.

온몸으로 바위를 핥으며 코를 킁킁댔다.
갈라파고스의 파충류가 된 기분이었다.
이 암석들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초록빛 물속을 유영하고 싶었다.
머리가 얼얼할 만큼 시린 감촉.
그건 여름을 기약해야겠다.





나린아, 잘하고 있어. 바람의 아이들

-엄마, 일기도 꾸준히 쓰다보면 글쓰는 실력이 늘겠지?
-그럼.

요즘 나린이는 원칙을 정해놓고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운동 앱과 요가 동영상을 보며 따라하고
꾸준히 일기를 쓰고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기 위해 나한테 폰을 맡기기도 한다.
밤마다 불안증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자기와의 싸움을 치열하고 하고 있는 중.
엄마가 응원해줄게.
우리딸, 잘하고 있어.



저녁 산책 바람의 아이들


많이 컸다.

아이들 방 페인트 칠 바람이 머무는 집


 

서쪽으로 난 창으로 저녁 햇살이 사르르 들어온다. 
지오방에서는 노을이 잘 보인다.

지오가 고른 색은 던에드워드 페인트의 '레몬 쥬스'
선셋뷰와 잘 어울리는 색이다.
상큼하고 따사로운 느낌.
어제 페인트칠을 마쳤다.
 천장 칠하는데 목뼈 부러질 뻔.


맞은편 나린이 방은 동향이다. 
나린이가 고른 색은 던에드워드 'Distant cloud'
색 이름이 먼 구름이라니.(너무 시적이잖아!)

이른 아침 햇살이 저 창으로 들어온다. 
저 문으로 나가면 테라스가 나온다.
색을 칠하고 보니 아침 빛이 들어오는 나린이 방의 저 칼라와
석양에 물드는 지오방의 레몬빛이 절묘한 매칭이다.

애들이 뭘 알고 골랐나?

나린이가 붓으로 모서리를 칠하고

넓은 면은 내가 롤러로 쓱쓱.







달리는 아이 바람의 아이들

"내일은 아침에 들판달리기 하고 전교생 이어달리기 해.
그리고 자치회 활동으로 마니또 뽑기한대. 
너무 기대 돼."

다음날 아침, 지오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사월의 첫날, 
아이들은 청팀 백팀으로 나눠 이어달리기를 했고
담임샘이 클래스팅앱에 사진을 올려주셨다.


올 가을엔 모두 마스크 벗고 
엄마 아빠 언니 동생 다 모여 운동회 했으면 좋겠다.
 


 


찰나의 광선 아무튼 기록


천창으로 들어온 광선이
그림 속 고양이 눈을 비출 때
반짝이는 노란눈과 마주쳤다.
찰나의 시간
우연한 눈맞춤







3월은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지 아무튼 기록

3월은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지난 시간 속의 나를 
우물안 들여다 보 듯 바라본 날들.

가는 곳 마다 우울에 갇혀 있던 내 모습이 보였다.
작년 초봄에 터진 사건들과 
불면에 시달리던 악몽같던 밤들과 
눈물에 뒤범벅된 나날들.
그 속에 갇혀 허우적되던 나를 
이제 담담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 지금 치유의 과정을 통과하는 중인가 봐'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게 되었다. 
그토록 원했던 
편안한 마음의 궤도에 도달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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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에 대해 당신의 똑똑한 말들로
그 의미를 숙고하고 곱씹으며 야단법석을 떨지만
우린 그저 삶을 살아가지.

그러니 오늘, 그리고 모든 서늘한 날들에
우리 쾌활하게 살아가야지.


메리올리버, 천 개의 아침 중에서
 

 

격리 3일째 아무튼 기록

확진 판정을 받은지 3일째.
감기몸살처럼 몸이 무겁다.
첫날은 괜찮았다. 
어제 아침부터 열은 없지만 머리가 무겁고 약간의 근육통과 인후통으로 종일 잠만 잤다.

지난 일요일 자가진단 양성이 나온 나린이를 데리고 보건소에서 pcr검사를 했다.
그때만 해도 나와 지오는 음성이었다.
다음날 나린이가 확진됐고 증상이 있는 지오를 데리고 성모병원에서 신속항원 검사를 받았다.
둘 다 양성. 우린 다음주 월요일까지 격리다.
셋이 종일 집에 같이 있다. 다시 방학이 된 것 같다.
나린네 반 아이들 아섯 명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마을에도 코로나가 돌고 있다. 
오늘 뉴스에서 확진자가 50만명이란 통계를 확인했다.


화요일 저녁인 독서모임을 착각하고 월요일 저녁에 **님네 집을 방문했다.
확진 전날이다. 
잠깐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는데...
독서모임은 취소되었고 **님께도 이 사실을 알렸다.
이런 경우 둘 다 참 난감하다.
**님은 이제 막 집을 지어 이사했고 금요일에 친구들이 놀러오기로 했단다.
자가진단 키트를 사서 현관문 앞에 놓아드렸다.
어제 검사해 보니 다행히 음성이었다며 내 상태를 묻는 문자가 왔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아마 양성이었다면 본의아닌 민폐가 아닐 수 없다. 
화요일의 독서모임은 나로 인해 무한 연기되었다.
사피엔스에 이어 총균쇠를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한 날이었다.
전염병 때문에 '총균쇠' 독서모임이 무한 연기 되다니...
며칠동안 멀미날 정도 꾸역꾸역 읽었다.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아마 중간에 덮어버렸을지 모른다.
총균쇠를 읽고 다시 사피엔스를 집어들고
호모데우스도 읽고 있다.
지구의 빅히스토리를 읽고 있으면 어떻게 살아야할지가 명확해진다. 





 

 


 

잘 가 누렁아 아무튼 기록


오늘 누렁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대통령 선거일이어서 가족 모두 집에 있던 날.
정목수는 이사할 집의 퍼티를 바르고 있었고
나와 나린이는 장작을 패고 있었다.
장작을 패는 동안 누렁이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간간히 구슬프게 짖는 소리도 들려왔다.
누렁이 소리가 들릴 때마다 우린 곁으로 달려가 누렁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집안에서 미장도구를 씻고 있을 때 정목수가 외쳤다.
누렁이 숨이 멎었다고...
오후 세 시 59분.
서쪽해가 누렁이를 비추고 있었다.
장작을 다 패고 누렁이 곁에 있던 나린이가 누렁이의 임종을 지켰다.
집안에서 소창을 찾아와 누렁이를 덮어주었다. 
정목수가 포크레인으로 단풍나무 앞에 땅을 팠다.
누렁이가 죽으면 묻어줄 곳으로 점찍어둔 장소다.
땅을 파는 동안 아이들은 누렁이 곁을 지켰다.
나린이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아주 많이 울었다. 
나린이가 정성스레 빗겨준 누렁이 털이 
오후의 햇살에 황금빛으로 출렁였다.
천으로 싸인 누렁이를 정목수가 땅속에 뉘였다.
지오가 집으로 들어가 말린꽃과 향을 가져왔다.

우린 누렁이 앞에 젯상을 차렸다.
상위에 꽃과 향, 누렁이 간식과 술을 올리고 네 식구가 한줄로 서서 절을 했다.
각자 삽을 들고 누렁이에게 흙을 뿌렸다.
단풍나무 앞에 작은 누렁이 무덤이 생겼다.
누렁이 정원을 만들어줘야지.
넌 단풍나무로 다시 태어나겠지.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을 잊지 말아주길,
우리도 잊지 않을게.

저녁을 먹으며 앨범을 보았다.
앨범속에는 아기 누렁이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모습이 담겨있었다.
누렁이와 함께한 11년.
한시절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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