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시 바람의 아이들


추석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라디오에서 '엄마의 사랑이 어떻고 반찬이 어떻고' 하는 사연이 흘러나왔다.
"엄마, 나 시 하나 생각났어. 집에 가면 적어줘야 해," 
집에 와서 지오의 시를 받아 적었다.
아무래도 시인으로 등단시켜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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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랑 반찬    (9월15일)

나는 엄마의 반찬이 맛이 있어 보였다.
엄마가 해 준 반찬 중에서 국을 먹으면 무슨 생각이 든다.
엄마의 반찬은 언제라도 맛있어 보였다.
엄마가 해 준 고기를 먹으면 이런 느낌이 든다.
엄마가 만들어준 반찬은 언제라도 소중한 것.
엄마가 해 준 반찬 중에서 모든 반찬들을 먹으면 이런 느낌이 든다.
엄마는 언제라도 우리 곁에 있으니까 정말 고맙다.
엄마는 어디서나 나를 보호해 주고 언제라도 아껴준다.
엄마는 언제라도 내 곁에 나를 보호하고
언제라도 함께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언제라도 우리 곁에 있어 주고
우리를 언제라도 우라랑 함께 즐겁게 죽을 때까지
즐거운 설날도 즐겁게 맞이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
엄마는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가 정말 소중해요.


이 시를 불러준 그 날 저녁,
맛있는 반찬이 없다며 반찬 투정을 했다.
이 시를 들이대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자
그건 그냥 시일 뿐이라며 일축하는 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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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희망          (9월 16일)

너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어.
너에게 빛나는 미소와 사랑과 희망으로
너에게 별빛과 미소가 되었으면
하고 싶은 너의 희망으로
너에게 미소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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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며칠 전에 불러 준 지오의 동화

제목:설날 인형
구술:지오(한글 못 씀)
대필:엄마(지오가 부르는 대로 적음)



오늘은 설날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무덤에 모여서 떡국을 먹었다.

그리고 절도 했다.

그때 쾅 어딘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나는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신발이 보였다.

하지만 그 신발은 사람도 없고 혼자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정말 신기해 보였다. 갑자기 신발에 얼굴이 올라왔다.

그건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한번 물어보았다.


 "너는 누구니?"

 "나는 인간이 아니야. 나는 설날 인형이야."

그건 그냥 설날 인형이었다.

나는 무척 신기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인형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가서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인형을 데려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인형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놀기도 하고 같이 지내기도 하고 책도 보았다.

나는 그날이 매일매일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후 어느날 나와 그 인형은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인형이 또 우리집에 놀러왔으면 정말 좋겠다.

그래서 그런 후 그 인형과 나는 약속을 했다. 그 인형은 약속을 지켰다.


이미지: 그림

이 그림이 설날 인형이란다.





추석을 보내고 소소한


월요일에 집을 떠났다가 어제 돌아왔다.
밀리는 고속도로를 피해 국도로 접어들었으나  
국도도 밀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목수가 집 공사 때문에 친정에 들를 수 없다 해서
월요일에 나 혼자 아이들만 데리고 안산으로 먼저 갔다.
마침 그날 오전에 청주 치과에 가는 동네 언니가 있어서
그 차를 얻어타고 청주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언니가 가려는 치과는 내가 가려는 버스 터미널과 많이 떨어진 곳.
언니 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서 안산행 버스를 타고 마중 나온 부모님을 만나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안산 친정집에 도착했다.
숄더백을 메고 커다란 트렁크를 질질 끌고
지오 손을 잡고 걷는 나.
배낭을 메고 뒤따라 걸어오는 나린이.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꼬질한 모습은 감출 수가 없다.
다림질 안 한 꼬깃꼬깃한 셔츠 입은 내 모습 또한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영락없는 여행자의 모습이다.
(그날 밤, 내가 벗어 놓은 그 셔츠를 엄마가 표백제로 빨아 다림질해서 옷걸이에 걸어 놓으셨다.
  제발 이런 셔츠는 꼭 다림질해서 입고 나가라는 잔소리와 함께. ) 


사흘 전이 엄마 생신이었다.
안산에 사는 두 언니 부부가 엄마 생신을 챙겨드린다.
생신 일주일 전이면 큰 언니가 전화를 주곤 했다.
주말에 엄마 생신 잔치할 건데 올라올 수 있냐고.
그동안 올라간 적이 거의 없다.
생신 챙겨드리는 것도 선물이나 용돈을 드리는 것도 나는 다 면제다.
그러기는커녕 시골서 없이 사는 막내딸 년이란 생각에
엄마는 갈 때마다 내게 용돈을 쥐여주신다.
이번에는 엄마에게 맛난 것도 사드리고 같이 영화도 보고 싶었다.
다음날 부모님 모시고 반월저수지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예쁜 정원과 소품을 겸한 레스토랑으로 각종 매체에 소개된 유명한 곳이다.
저수지 가는 길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봄 소풍 가던 그 길은 논밭이 있고 기와집이 있는 시골길이었다.
불과 3, 4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 정취는 변함없었는데
그사이 공장과 물류 창고, 식당들이 들어서 있었다.
운치 있는 기와집들은 이제 그림책 '작은집 이야기' 속의 볼품없는 집으로 전락해 있었다. 
레미콘트럭들이 먼지 폴폴 날리며 오가는 길을 지나고
KTX가 지나는 고가도로 밑을 지나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여기가 내 친구 **이 살던 터야. 개가 여기서 호박 농사를 지었지.
  이런 게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

추석을 앞둔 평일 점심인데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닭구이, 새우구이, 소시지, 폭립, 목등심, 감자랑 볶음밥이 세트로 나오는 바비큐랑
크림 버섯 안심 파스타, 맥주, 사이다를 주문했다.
음식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가격은 좀 사악하지만...
작게 썰어서 엄마, 아버지 접시에 담아 드렸다.
 "이게 얼마냐? 뭐 이런 걸 사 먹니? 난 입맛에 안 맞아."
하면서 아버지는 맛있게 드셨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맛만 좋구먼." 

식당 안에 있던 소품가게는 별도의 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식당을 나와 정원을 가로질러 걸었더니 전에 없던 3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1층에서 3층까지 연결되는 경사로를 식물원으로 설계했고
1층에는 각종 소품과 악세서리를 파는 가게, 정원용품 가게가 있고
2층에는 카페가 있었다.
개천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시멘트 공장이 있는,
이런 후미진 곳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 놓다니....
이 건물을 본 아버지가 또 한 말씀
 "여긴 내 친구 **이가 살던 터야."

사업을 확장하느라 바빴는지
예전에 주인장의 바지런함과 손때가 묻어있던 정원은 거의 방치 수준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간 언덕에 있던 그네 의자도 없어졌다.

내가 나고 자란 동네. 그나마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저수지 가는 길'의 변화에 충격받은 하루였다.   
아이들은 친정집에 있는 내내 소파에 앉아 만화만 보았다.
이제 컸다고 놀이터에서 놀지도 않는다.
작년에 언니들이랑 모은 돈으로 새로 바꿔드린, 우리 집 컴퓨터 화면의 몇 배에 달하는 커다란 TV 화면.
리모컨만 누르면 수많은 채널을 맘껏 볼 수 있는, 우리 집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그 편리함.
푹신한 소파랑 대형 TV. 그 유혹에 잠깐 빠진 적도 있었지만 절대절대 사지 말아야지.
종일 소파에서 뒹굴며 만화만 보는 딸내미들 꼴을 어찌 보려구. 

안산에서 수원 시댁으로 갈 때는 짐이 더 불어났다.
아버지가 수원과 안산 경계에 있는 터미널까지 태워주시고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갈 참이었다.
터미널은 대단히 복잡한 사거리를 지나야 나온다.
작년에 이 사거리에서 접촉 사고를 낸 후로 아버지는 이곳을 두려워하신다.
사거리를 건너지 못하고 내렸더니 모든 택시가 그냥 지나간다.
카카오택시 앱을 사용하려니 내 폰은 알뜰폰에 최저요금제로 해놓은 3G폰.
데이터를 켜서 앱을 활용하려 해도 속도가 느려 실행되지 않았다.
젠장. 슬슬 내 안의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 
맛있는 거 사달라며 징징대던 지오까지 내 화에 기름을 붓는다.
길을 건널까 하다가 너무 멀어서 그냥 우회전해서 간신히 택시를 잡았다.
광교 가는데 왜 이곳에서 택시를 잡았느냐는 기사 아저씨 한 마디에 괜히 울컥했다.

"네 알아요. 택시가 안 잡혀서요. 그냥 유턴해서 가주세요."

"사거리 지나면 택시 정류장인데.어디서 오시는 거예요?
 ......아버지한테 사거리 건너서 내려달라고 하시지."

"아는데 팔십 다 된 아버지한테 이곳까지 태워달라고 하는 것도 죄송하구...."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택시 안에서 엉엉 울었다.
당황한 기사 아저씨.
횡설수설 신세 한탄하는 나.
 
"저는요, 못된 막내딸 년이예요. 명절 때 부모님께 용돈 받는..." 
"부모님 생각하는 마음은 참 가상하신데 그래도 명절 앞두고 기분 좋게 가셔야죠."
  .....

나린이랑 지오는 부러 명랑한 분위기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기사 아저씨랑 이런저런 농담을 하며
시댁이 있는 광교 신도시에 도착했다.
곧바로 들어가기 싫어서 트렁크를 질질 끌고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레몬에이드를 난 시럽을 듬뿍 뿌린 라떼를 마셨다.


작년 여름 일이 생각났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비염이 심해서 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청주 한의원에 갔었다.
그 전해에도 비염 때문에 갔다가 침 맞고 보약 먹고 꽤 효과를 본 한의원이었다.
맥을 짚고 코에 침을 꼬아주던 한의사 할아버지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몸이 이렇게 되었냐고, 그 한마디에 울컥했다.
코에 꽂았던 침을 빼내면 코를 '횡' 풀어 피를 빼야 한다.
그때 코를 풀면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엉엉 소리내 한참을 울었다.
누가 보건 말건 알 바 아녔다.
다행히 점심시간이라 침 맞는 이는 나밖에 없었다.
지금 울지 않으면 내 안에 진득한 응어리가 달라붙어
영영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한바탕 시원하게 울고 나서 모자를 눌러 쓰고 나오려는데
한의사 할아버지가 원장실로 나를 불렀다.
반은 지금 먹고 반은 집에 가서 먹으라며
내 손에 청심환 한 알을 쥐여주셨다.
청심환을 씹고 걸어 나오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금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이거 완전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인생에 있어서 코믹과 울컥은 한 끗 차이.
파도를 타 듯 이 둘 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바리바리 싸 온 음식들을 정리하고
트렁크에 담긴 짐도 정리하고
드라마와 영화 한 편 보고 잠들었다.
명절 때 뭐 한 일도 없는데 마치 대가족 맏며느리 역할이라도 한 것처럼
몸이 무겁고 계속 졸리기만 하다.
이런 말 하면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 모든 며느리가 눈에 쌍심지 켜겠지만
차라리 식구들 북적대는 명절이 내겐 그립기만 하다.
시아버님이 혈혈단신이시다 보니 시댁에 모이는 친척이 없다.
정목수도 누나만 하나 있는 외아들이라 명절 때 모이는 식구는 단출하다.
그나마 누나가 결혼을 하지 않아 아이들에게 고모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
아이들은 종일토록 푹신한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눌러대며 만화만 본다.
난 홀로 앉아 전을 부친다.
"얘들아, 사람 나오는 것 좀 보자."
연예인이 떼로 나와 웃고 떠드는 예능 프로라도 보면 낫겠는데 아이들은 요지부동이다.


짧게 쓰려던 추석 후기가 횡설수설 장황해졌다.
길 위에서의 찰나는 내게 영원과도 같다.
길 위에서의 순간순간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주절주절 이야기꾼이 돼버린다.

 








이야기의 힘 3 소소한


지난 주 일요일, 이웃 마을에 있는 숲속작은책방에서 열린
김탁환 작가의 북콘서트에 다녀왔다.
이번에 출간된 세월호 민간 잠수사 이야기를 다룬 소설 '거짓말이다'를 읽고
다시금 분노가 치밀었고, 사람들이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이야기를 파헤쳐
수면으로 건져올린 그 작업 과정을 직접 듣고 싶었다.
지난 10년 간 52권의 장편을 썼다는데 '거짓말이다'가 내가 읽은 그의 첫 소설이라니..
매일매일 50매 분량의 소설 원고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써왔다는 그 저력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역사속 인물을 다룬 소설을 쓸 때면 그 인간에 대해 천번을 생각한다고 한다.
역사속에서 단 한줄로 기록된 사실을 고전지식과 자료조사,
그리고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것이다.
작가님이 북콘서트에 온 사람들에게 물었다.
한 인간에 대해 천 번 이상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당신 인생에 가장 중요한 하루가 언제였냐고?
그 작업은 한 인간에 대해, 그에게 가장 중요했을 하루에 대해 
천번 이상 생각하고 고민하는 치열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이 부분에서 '괴테와의 대화'라는 책을 언급했다.(꼭 읽어봐야지.)
  
(나머지는 저녁 먹고 써야겠다.)
 

이야기의 힘 2 소소한



아이들 씻게 하고 양치하고 재울 시간.
먼저 누워서 아이들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어제는 눈이 뒤집힐 만큼 피곤해서
쓰러지면 곧 잠들 판이었는데
아이들 잠든 걸 확인하자마자
잽싸게 거실로 튀어나와 컴퓨터를 겼다.
다운받아 놓은 더블유 3회를 재생시켰다.
두 편만 보고 자정 전에 자야 하는데
내리 세 편을 보았다.
언제 졸렸냐는 듯 말똥말똥해졌다.
오늘 아이들 학교 보내자마자
다섯 편을 내리 보았다.
인제 그만 봐야 하는데 멈출 수가 없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특히 드라마는... 윽~

이야기의 힘1 소소한


초등학교 방과후수업이 있는 날.
'오늘은 뭘 하지?' 수업하러 가기 직전까지 고민이다.
프로그램 계획안은 미리 짰지만 뭔가 더 입체적으로 재밌게 할 수 없나 늘 고민이다.
실력 있는 강사의 좋은 프로그램을 공유할 수 있는,
방과후미술 강사를 위한 연수 같은 것도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시골이다 보니 학교에서 방과후 강사를 섭외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우연한 기회에 2년 전부터 동네 초등학교 방과후미술수업을 하게 되었고,
올해는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수업하고 있지만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프로그램에 대해 늘 고민이다.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봐도 딱히 이거라고 공감 가는 내용이 없다.
2년 조금 넘게 하다 보니 그동안의 경험과 직관과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 등
즉흥적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내가 하는 내용이 차곡차곡 쌓여 나만의 수업계획안이 만들어지고 있다.
어제도 차를 타고 가면서 스토리를 짜듯 강의 시놉시스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9월 한 달은 드로잉 수업.

'요즘 날씨가 좋으니까 밖으로 나가서 그리는 게 좋겠어.
 우선 교실 안에서 '내 마음의 나무' 를 그려보자고 하는 거야.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나무를 관찰하고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서 자세히 그려보는 거지.'

우선은 여기까지. 그리고 수업의 나머지 스토리는 아이들이 완성한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상상력과 질문과 그림으로.

칠판에 오늘 수업할 내용을 적는다.
'내 마음의 나무 그리기'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얘들아, 우리 먼저 나무 이름 대기 게임 한판 하자.
  아이엠 그라운드 나무 이름 대기~ 느티나무, 은행나무, 미선나무, 단풍나무...
  꿀꿀 나무. 엥 꿀꿀나무?"
 "네. 저 지금 삼겹살이 먹고 싶어요."
 "귀신 나무." 
버드나무 이름을 모르는 아이가 그걸 귀신나무라고 말한다.
나무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하고 난 뒤 각자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한 책상에 모여 앉은 3학년 여자아이들은 서로의 그림을 보며 서로 엇비슷하게 그린다.
대부분 나무에 다람쥐와 온갖 동물이 사는 마을을 만들어 놓았다.
머릿속에 기괴한 상상이 가득 든 5학년 윤재는
나무의 단면을 미로로 가득 찬 도시로 그려 놓았다.
아이들이 모두 푹 빠져서 그림을 그리고
다 그린 아이는 스스로 와서 자기 그림에 관해 설명을 해 준다. 
밖에 나가서도 원하는 곳에 자리잡고 앉아 그림을 그렸다.
교실에 들어와 내가 그린 그림 몇 개를 보여주고 그림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더니
아이들이 내 주변에 몰려와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수업 신청을 했다는 5학년 아이는 어떤 펜으로 그렸는지 적어달라고 한다.
어떤 3학년 아이는 내 그림 한 장 달라고 하고, 어떤 아이는 자기 얼굴을 그려달라고 하고...
그동안 나 스스로 수업이 재미없고 프로그램에 대해 늘 고심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이들과의 소통이 없었던 것이다.
늘 무언가를 설명하고 그걸 그리게 하는 게 전부였던 것.
수업에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미술수업이니만큼 설명보다는 내가 직접 그린 그림 한 장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알았다. 
앞으로 이야기와 그림으로 아이들과 재미있게 소통해야 겠다.



   




 




 



시인 지오 바람의 아이들


지오의 시심이 폭발하던 어느날,
몇 편의 시를 한꺼번에 토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구술: 정지오(아직 한글 못 씀)
-대필: 엄마(지오가 말하는 대로 적음)


스르륵스르륵 뱀

나는 뱀을 만져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숲속을 가고 있을 때였다.
그때 스르륵스르륵 뱀의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실제 내가 뱀을 본 거였다.
나는 만져 보고 싶은 마음에 한 번 만져 보았다.
그런데 그 뱀이 나를 보고 나를 깨물었다.
그 뱀이 독뱀인 것 같아서 나는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 뱀은 독뱀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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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쾅쿵쾅 내 심장

나는 밖의 풍경을 보았다.
바람이 쌩쌩 불었다.
그래서 나는 밖에 나가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한번 밖에 나가 보았다.
그래서 나는 달려 보았다.
뭐가 쌩 지나가는 걸 보았다.
그래서 멈췄다.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는 그것이 신기했다.
내가 본 것은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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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 비행기

쌩 비행기가 날아간다.
나는 밖에서 다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걸 보았다.
비행기는 하늘 높이 날아서 구름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도 하늘에서 날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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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작은책방

나는 책방에 갔다.
책방에서 책을 보았다.
근데 나는 그 책이 정말 좋아보였다.
그래서 나는 시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한번 그 책을 보고
그 책에 담긴 글씨들을 모아 동시를 만들었다.
그건 나한테 제일 소중한 동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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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의 보물찾기

꿀꿀 돼지는 딸기를 먹고 싶었다.
그래서 난 딸기를 찾아보았다.
사과처럼 생긴 딸기 어디어디 숨었니?
동물 세 명 있는 박스에 숨었다.
야옹이는 사과를 먹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사과를 찾아보았다.
딸기처럼 생긴 사과 어디어디 숨었니?
동물 네 명 있는 박스에 숨었다.
토끼는 키위를 먹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키위를 찾아보았다.
파인애플처럼 생긴 키위 어디어디 숨었니?
동물 다섯 명 있는 박스에 숨었다.
강아지는 포도를 먹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포도를 찾아보았다.
토마토처럼 생긴 포도 어디어디 숨었니?
동물 여섯 명 있는 박스에 숨었다.

("이제 그만 찾자 지오야." 그래서 여기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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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무리 소소한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인사를 하려 합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 **가 여러분과의 이별을 기다리며 요양 병원에서 전합니다.
아내는 지금까지 모든 이들의 추억을 기억하며 살아서 기쁘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과 기쁘고 즐거웠던 날과 슬프고 어려웠던 날 속에서 함께 하던 모든 시간을 사랑으로 정리하고
인생의 여정을 마치고자 하여 지금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려 하오니 부디 오셔서 이 순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도와 주십시요.
남편으로 아내에게 줄 마지막 선물은 여러분입니다.

추신-장례식은 전혀 따로 없이 소천하면 바로 대학병원에 시신 기증이 이루어질 계획입니다.
본인의 선택이오니 이해하여 주십시오. 주변 인연들에게 전해주세요.


비 내리던 어느 날, 정목수가 내게 보여준 문자의 내용이다.
마을이 환하게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
오 년 넘게 손수 짓고 있는 그 남자의 한옥이 순간 눈앞에 펼쳐졌다.
남자는 작은 집을 지어 아내와 함께 살면서 그 옆에 한옥을 짓는 중이었다.
그 집에 가본 게 삼 년 전이었던가?
집은 아직도 미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할 아내가 지금 세상과 작별하려 한다고 문자가 온 것이다.
그 남자의 아내를 본 적은 없다.
몇 년전 암이라고 했고 자연요법으로 치료중이라는 말만 들었다.
남자는 미장공이다.
우리 집 회벽 마감도 주방 타일도 그 남자의 도움으로 마무리되었다.
어쩌다 한 번씩 뜸하게 마주할 때마다 물 같고 바람 같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반듯하고 따뜻하고 사려깊은 사람. 
남자의 아내도 봄날 햇살처럼 따뜻하고 투명한 여인이었으리라.
그날 빗속에서 듣던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마음을 쓰리게 파고 들었다.

이 문자를 받은 지 오 일째인 오늘,
정목수로부터 부고 문자를 전달받았다.
아내의 나이는 서른 중반이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곁에서 지켜보며 그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 해 준 남자.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이 더 깊은 사랑을 확인하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이었으리라 감히 짐작해 본다.

둘만의 보금자리를 꿈꾸었을 아직 완공 되지 않은 한옥.
혼자 남은 남자는 그 집을 계속 지을까?
왜 그 집이 자꾸만 생각나는 걸까?
 

 

   








요즘. 소소한


아이들 학교버스에 태워주고 동네 한바퀴 산책하고 돌아왔다. 
아침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내일은 아이들 개학날이다.
고맙게도 방학동안 하는 돌봄 교실에 나린이 지오 둘 다 거의 빠지지 않고 나갔다.
이 폭염에 둘 다 온종일 집에 있었으면 우찌 살았을꼬?
오늘 보니 큰 버스안에 연욱이 혼자 타고 있다.

골목마다 건조기 작동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고추 말라가는 매캐한 냄새가 모터소리에 실려 여기저기서 풍겨온다.
이 가뭄에도 맷돌호박은 커다랗고 탐스럽게 열매를 맺었다.
갈색으로 변해가는 대추는 작고 쪼글쪼글하다.
작년에도 가뭄이 심하다 했는데 올해는 더하다. 
할매들 집 텃밭에는 심은지 얼마 안 된 가을 배추랑 열무가 자라고 있다.


집안에 갑자기 개미가 많아졌다.
"지오야. 과자 흘리면 이렇게 개미가 많이 생겨."
쪼만한 개미들 여럿이 꼬딱지 만한 과자부스러기를 영차영차 나르고 있다.  
"엄마, 왜냐하면 여기 이렇게 틈이 점점 커져서 거기서 개미가 들어오나봐."
그래 너무 건조했지.


더운날엔 차라리 땀흘리며 일해야 한다.
선유동 식당에서 일하는 것 좋았는데.
영법용 가스불 앞에서,
짠내 나는 땀 뚝뚝 흘리며.
폭염 속에 특별한 일없이 집에 있는건 정말 곤욕이다.
몸에서 기름 땀만 삐질 나온다.
허리디스크 때문에 식당에 못나간 뒤에 그곳에서 짤렸다.
그 후로 아랫집 언니는 날 부르지 않고 우리 동네에서 가장 체력 짱짱한 언니를 부른다.

알바도 짤리고
방학이라 학교 수업도 없고
애들은 학교 가고...
심하게 더위 먹은 어느날,

갑자기

페북을 시작했다.
누구와 친구맺고, 파도 타고, 남들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댓글 달고, 좋아요 눌러주고...
이런 시스템이 싫어서 2년 전에 잠깐 하다가 접었던 페북. 
요즘 날마다 페북에 그림을 올리고 있다.
(사실 이게 페북을 다시 시작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이,
과거에 알았으나 지금 별로 궁금하지 않은 이들이
친구요청 해오면 무시했는데
지금은 내가 모르는 이들한테 친구요청을 날리고 있다.

그동안 은둔자를 고수하며 콕 숨어 살았던 것 같은 기분.
과거의 나를, 과거에 알았던 사실을 단정 짓지 말 것.













 

    


파란 고래 소소한



늦은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선유동 계곡에 갔다.
아이들은 이제 물과 친해졌다.
낮은 바위 위에서 거침없이 뛰어내리고, 잠수도 하고 개구리헤엄도 친다.
하늘을 보고 누워 양팔을 쭉쭉 뻗으며 계곡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배영이 유일했다.
대여섯 번 팔을 휘젓고 나서 멈춰서 보니 이크,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머리가 수면 위아래로 아슬아슬하게 달랑거렸다.
평형으로 자세를 바꿨다.
여러 번 물살을 가르며 팔다리를 움직였다.

'그런데 저 너머 보이는 바위는 왜 계속 제자리에 있는 거지?'

힘이 다 빠져버려서 다시 멈춰 섰다.
엄지발가락 하나만 간신히 땅에 닿을락 말락 했다.
덜컥 겁이 났다. 손을 흔들어봤자 소용없었다.
누군가 손을 흔들어 살려달라고 하기엔 지금 이곳은 너무나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때 어디선가 파란 고래 한 마리가 머리 위로 날아왔다.
영롱한 눈망울에 긴 속눈썹을 가진 돌고래였다.

'아, 내 생명의 은인.'

녀석의 꼬리에 매달리다가 몸이 뒤집혔다.
돌고래를 붙잡고 엎치락뒤치락 버둥대다가 간신히 등에 올라탔다.

"이대로 날 저 멀리 푸른 바다로 데려다주지 않을래?"

그때 해사한 얼굴을 가진 청년이 내게 다가왔다.

"아줌마 괜찮으세요?"

"아 네. 고맙습니다. 여기 튜브여."

청년은 돌고래 튜브를 갖고 한 무리의 친구들이 놀고 있는 쪽으로 가 버렸다.

'아흐, 쪽팔려.'

얼른 나린이와 지오 쪽으로 다가갔다.

아이들은 소리 내 웃기만 할 뿐 별말이 없었다.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며칠 뒤 나린이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그때 엄마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장난치는 줄 알았어. 그냥 이상했어."

"그리고 또?"

"완전 창피했어."

열심히 수영연습을 해야겠다.
나도 내년에는 멋지게 다이빙도 하고 잠수도 하고 개구리헤엄도 칠 테다.


















 

달을 보다. 소소한



누운 지 몇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좀체 잠이 오지 않는다.
커피를 많이 마신 것도, 낮잠을 잔 것도 아닌데...
몇 번을 뒤척이다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눈을 떠보니
역시나.
창밖에서 둥근 달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보름달과 눈이 마주친 밤이면 어김없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달빛이 내 몸을 간지럽히며 밤새 뒤척이게 한다.
새벽 두시가 넘어간 시간.
희끄무레한 노란빛이 방안에 가득 들어차 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나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아침 일찍 일하러 가는 정목수 밥 차려줘야 한다고.'

방향을 180도 뒤집어 달을 등지고 누웠다.
달빛이 여전히 등을 두드리며 장난을 걸어온다.

'나 안 볼테야? 이 교교한 빛을 한번 보라구'

오래전, 빛 보기 명상을 한 적이 있다.
달빛, 물에 비친 햇빛,
나뭇잎을 통과한 투명한 햇살과 촛불의 불빛들.
온갖 빛을 오랫동안 보았다.
그때 한참을 서서 보름달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달 주변에 푸른 띠가 생기면서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그 순간 몸이 붕 떠오른다.
우주 어딘가를 홀로 떠도는 착각에 빠져들며
더없이 편안하고 황홀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뭐였지? 이 괴상한 명상법은.....
  
'하지만 오늘은 안된다고.
 아침밥 안 먹고 가면 이 땡볕에 얼마가 힘들겠냐고.'

마당에 나가 달을 보고 싶지만 어서 잠들어야 한다,
남편 밥 해먹이고 아이들 챙겨서 학교에 보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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